Nohmad89

프로 여행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 곳에 오래 머물면서 언어와 문화도 같이 배워가는 깊이있는 여행을 추구하는 어느 아마추어 여행자의 이야기

호주/호주 여행지

인도양과 맞닿은 서호주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 프리맨틀

Nohmad89 2019. 4. 22.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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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휴양지는 아닌데도 휴양지 같은 느낌이 나는 장소들이 있다. 커다란 수영장과 루프 바가 있는 유명한 5성급 호텔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현대 문물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어 도시의 답답함이 완전히 사라진 곳도 아니다. 그럼에도 도심지인 퍼스에 인접한 항구도시인 프리맨틀은 바쁜 현대사회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달래주는 휴양지 같은 도시다. 

 

서호주에 여행을 올 일이 있다면 프리맨틀은 반드시 한번 와봐야 할 명소라고 단언할 수 있다. 스완 강을 따라 쭉 따라 내려오다 보면 인도양과 접하게 되는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프리맨틀은 퍼스에서 기차, 버스, 페리를 타고 올 수 있는 비교적 가까운 지역이다. 기차를 탈 경우 30분 정도, 버스는 40~50분 정도, 페리는 1시간이 소요된다. 정말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곳이기 때문에 나 역시 가끔 바다가 보고 싶거나 쉬고 싶을 때 프리맨틀을 종종 찾아오곤 했다.

 

옛 건축 스타일을 유지한 건물이 많다.
프리맨틀의 단촐한 상점가.

사실 프리맨틀에 특별하고 유명한 관광지가 있는건 아니다.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와서 시내를 둘러보며 천천히 걷다 보면 왠지 모르게 힐링이 된다. 옛 건축양식을 그대로 보관해 놓은 앤티크 한 건물들이 시내 중간중간에 남아있어 마치 동화 속을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야외에서 간단한 식사나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많다.

중심가를 돌며 여유롭게 길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다 보니 금세 프리맨틀의 핫 플레이스라고도 할 수 있는 프리맨틀 마켓에 다다랐다. 입구에 쓰여 있는 숫자와 같이 프리맨틀 마켓은 1897년에 문을 연 서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이다. 오래전 첫 이주민들이 정착하러 왔을 때부터 이용된 곳이라고 한다. 이미 100년도 넘은 전통을 자랑하고 있고 내부에는 온갖 싱싱해 보이는 과일이며 먹거리가 즐비하다. 또한 여러 토착 공예품이나 미술품도 볼 수 있어 몇 바퀴를 돌면서 구경해도 모자를 만큼 흥미롭고 재미있는 곳이다.

 

마켓 입구.

마켓의 내부에는 당장이라도 사서 한입 베어물고 싶은 과일들이 가득하다. 서양 국가에서 잘 찾아보기 힘든 시식코너도 중간중간 있으니 맛있어 보이는 과일이나 과자를 조금씩 먹어보며 즐거운 쇼핑을 할 수 있다. 또한 공예품 코너에서는 주인장이 직접 부메랑을 날리며 시범을 보이기도 한다. 그냥 쉽게 던진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줄에 묶인 것처럼 잘 돌아오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먹거리가 공예품이 가득하다.

역시나 프리맨틀에도 캣버스가 운행되고 있어 관광객에게 최상의 편리함을 제공해준다. 서호주에는 퍼스, 프리맨틀, 준달럽 이 3개의 도시에서 무료로 캣 버스를 운행한다. 우리나라도 우리가 낸 세금이 낭비되지 않고 올바른 곳에 잘 쓰인다면 이런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을까? 괜스레 서호주가 부러워졌다.

 

프리맨틀의 캣 버스는 퍼스의 캣 버스와는 다르게 배차 간격이 조금 긴 편이라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여유를 가지면 좋을 듯하다. 블루와 레드의 노선을 가지고 있고 두 노선 다 한 방향으로만 도는 회차 형식이니 버스를 타고 천천히 창밖을 보며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도 괜찮다. 무료 버스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이용하려고 해서 굉장히 붐빌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다. 가끔 캣 버스를 타고 갈 때는 나 홀로 종점까지 간 적도 많다. 정말 한 푼 안 들이고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가성비 최고인 여행법이다.

 

캣버스는 사랑입니다.
프리맨틀 무료 캣버스 노선도.

신기한 게 시티를 구경할 수 있는 무료 버스가 있다고 하면 하루 종일 그 버스만 고 돌아다닐 것 같지만 막상 캣 버스를 타는 시간보다 내 발로 직접 걸어 다닌 시간이 더 길었다. 물론 먼 거리를 이동하려고 할 때는 캣 버스의 도움이 절실하지만 정류장 사이사이의 거리가 그다지 긴 편이 아니기 때문에 천천히 걸어 다니면서 골목골목을 세세히 관찰하며 사진을 찍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마켓을 나와 호주에서 꼭 먹어봐야 한다는 '피쉬앤칩스'를 먹어보기 위해 항구 쪽으로 발을 돌렸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 덕분인지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많이 나와 오후 한때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고, 그들에게서 나오는 행복에너지 덕분에 나 역시 기분 좋은 오후를 만끽할 수 있었다.

 

실제로 쓰이던 닻.
항구 끝에 조형물을 설치해 감각적으로 보이게 했다.
호주와서 처음으로 먹은 피쉬앤칩스.

피쉬앤칩스는 말 그대로 생선 튀김과 감자튀김이다. 이름만 들으면 뭔가 있어 보이는데 내용물은 단출하다. 호주가 영국에서부터 온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보니 전통음식이라고 할만한 건 대부분 영국식의 음식이 많다. 영국식 음식이라니. 말만 들어도 암담하다. 이미 영국의 음식은 맛없기로 정평이 나있지 않은가. 그래도 호주에서도 엄청 많이 먹는 음식이라고 해서 항구도시에 온 김에 도전해봤다. 고작 생선 두 덩어리에 감자튀김이 전부인 녀석이 $18. 일자리를 구하기 전이라 돈을 아껴야 하는 나로서는 꽤 큰 금액이었다. 

 

나름 거금을 지불하고 주문한 피쉬앤칩스는 기대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기대한 만큼이었다. 정말 그냥 생선 튀김 하고 감자튀김. 감자튀김은 진짜 왜 이렇게 많이 주던지 나중에는 물려서 1/3 정도를 남겨야 했다. 왜 영국이 음식 쪽에서 혹평을 받는지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런데 호주 생활을 하면서 해변가에 놀러 가면 이상하게 분위기를 타서 피쉬앤칩스를 먹은 적이 많았고, 나도 모르게 피쉬앤칩스가 입에 길들여져 버려 지금 한국에 돌아와서는 호주 하면 떠오를 정도로 그리운 음식이 되어버렸다. 물론 생선 튀김은 어디서든 먹을 수 있겠지만 호주의 아름다운 바다를 보며 레모네이드와 같이 먹던 그 맛을 재현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이런 교회라면 무교인 나라도 매주 다니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우리나라였으면 벌써 다 훔쳐갔겠지'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라운드하우스.

항구 근처에 앉아서 쉬던 중 언덕 위에 요새처럼 생긴 건물이 보였다. 어떤 건물 일지 궁금하기도 했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전망도 상당히 근사할 거라 생각해서 산책도 할 겸 천천히 언덕을 걸어 올라갔다.

 

이 건물은 라운드하우스라고 하며 서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한다. 1831년에 건설되었다고 하며 8개의 감방을 가진 감옥이었다고 한다. 또한 식민지에서의 첫 사형이 집행된 곳이라고도 한다. 그 당시에는 죄를 지은 사람이 많이 없었던 건지 형에 대한 기준이 엄격하지 않았던 건지, 조그마한 건물이라 감옥일 거라 상상도 못 했었는데 내부를 둘러보니 감옥시설이 전부 갖춰져 있다. 입장료는 따로 없지만 기부 형식으로 입장료를 받는다고 한다.

 

3시 반이면 문을 닫으니 그 전에 관람해야한다.
라운드하우스에서 본 인도양의 풍경. 죄수들이 이런 풍경을 보고 지내는건 벌이 아니라 상 아닌가?
감옥에서 쓰이는 온갖 도구들을 잘 전시해 놓았다.

크게 둘러볼 건 없지만 그래도 서호주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건물이라고 하니 그 역사적 가치를 느끼러 한 번쯤 올라가 볼 만하다. 근처에 보이는 풍경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설명을 안 듣고 그냥 구경만 했다면 이 건물이 감옥이었을 거라고 절대 상상조차 못 했을 것 같다.

 

드라마에서만 본 기마경찰!
가끔 와보면 웨딩사진을 찍는 커플도 꽤 많았다.

많은 커플들이 웨딩사진을 찍으러 올 정도로 아름다운 곳 프리맨틀. 해변가에 앉아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멀리서 행복의 순간을 즐기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런 낭만적인 곳에서 사랑의 흔적을 남기는 저들보다 지금 이 순간 더 행복한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나도 한번쯤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훗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프리맨틀에서 행복한 시간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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