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아메리카노 주문하기
호주에 간지 얼마 안 되었을 때쯤, 서양권 나라에서 여유롭게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싶다는 기분이 문득 들었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멋진 한 장면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간단히 점심을 먹은 어느 오후, 가벼운 마음으로 시티로 향했다. '카페에서 커피 하나 주문하는데 뭐 어려울 게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지나다닐 때마다 봐 두었던 시티 내의 카페에 들어갔다. 점원은 가게로 들어오는 나를 향해 반갑게 웃어주며 인사를 해주었고, 이번만큼은 영어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에 들뜬 나는 역시 반갑게 웃으며 카운터 앞에 섰다.
-안녕! 나 아메리카노 한잔 주문하고 싶어. -응? 뭐라고? -아메리카노. -응? 그게 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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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머리가 하얗게 돼버렸다. 커피 한잔 달라고만 하면 모든게 순조롭게 풀릴 거라 생각했던 영어 초보에게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프리토킹 시간은 예상치 못한 난관이었다.
왜 내 말을 못알아듣는거지? 내 발음이 안 좋은 건가? 영어로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건가?
아메리카노가 없을거라는건 절대 생각하지 못한 시나리오였기 때문에 이 대화의 흐름이 막히는 건 영어 때문이라고 혼자 생각한 나는 점점 더 자신감을 잃어갔다.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이다 근처에 도움될만한 게 있나 싶어 옆을 보니 다행히도 옆에 구세주처럼 보이는 메뉴가 있었다.
그런데 Americano라는 단어가 아예 안보이네...
확실히 아메리카노라는 메뉴가 없다.
이 날은 대충 눈에 보이는 대로 집어낸 라떼를 마셔야만 했다. 커피 마시면서 사람들 구경은 무슨, 창피함이 머리 끝까지 올라와 도저히 자리에 오래 앉아있을 수 없었다. 뜨거운 라떼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홀라당 마셔버리고 서둘러 카페를 뛰쳐나왔다. 그렇게 호주에서의 첫 카페 탐방은 끝이 났다.
이후 초록창에게 도움을 청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내 영어가 잘못된 것도 아니었고, 아메리카노가 콩글리쉬인 것도 아니었고 단지 호주에서 아메리카노를 부르는 다른 말을 사용하는 것뿐. 그렇게 문제를 알고 나니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간단하다. 호주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을 땐 롱 블랙(long black)을 주문하면 된다. 그렇다고 모든 카페가 다 그런 건 아니다. 호주라도 스타벅스에서는 메뉴판에도 아메리카노가 쓰여 있고, 일반 카페라 해도 종업원이 아시아계 직원이라면 아메리카노를 알아들을 수 있다. 하지만 작은 도시의 카페나 종업원이 서양인라면 아마도 롱 블랙이라고 주문을 해야 내 말을 이해할 확률이 높다. 그래도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는 말처럼 이왕 호주에서 커피를 마신다면 롱 블랙을 주문해서 마셔보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그리고 한 가지 더. 무더운 여름의 호주를 여행하다가 커피를 마시게 되는 경우에 우리나라 커피를 생각하고 아이스 롱 블랙을 주문한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얼음을 한가득 넣어줘서 목구멍이 차가울 정도로 시원한 커피지만 호주에서는 10년 정도 전 만해도 아이스 커피라는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아시아인들이 조금씩 들어오면서 주문을 하다보니 알게된거라고. 그래서 그런지 아이스 롱블랙을 주문해도 미지근한 물에 정말 얼음 2~3개만 띄운 커피가 나온다. 호주에서 갈증이 나고 카페인이 당겨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보다는 차라리 마트에 가서 시원한 커피우유를 마시는 게 훨씬 낫다.
우리나라 카페에서는 주로 음료와 디저트를 먹는 게 일반적이다. 케이크나 쿠키, 끼니가 될 만한 건 빵이나 샌드위치 정도. 하지만 호주에서는 카페에서 꽤 그럴듯한 음식들로 배를 채울 수 있다. 이럴 거면 음식점이라고 하지 왜 카페라고 하는지 의문이 든다.
내가 주로 갔던 호주에서 유명한 카페 Dome은 브런치 메뉴를 포함, 피자나 햄버거도 주문이 가능하다. 나는 카페에 가면 무조건 롱 블랙을 마셔서 이런 메뉴가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타즈매니아(우리나라의 제주도 같은 섬)에서 일본인 레스토랑 사장님께 개인 과외로 한국어를 가르칠 때 항상 카페에 가서 수업을 진행했는데, 그 당시 사장님이 커피와 감자튀김을 시켰던 게 정말 충격이었다. '아니 이걸 어떻게 같이 먹지?'가 아니라 '여기서 이게 주문이 돼?'라는 놀라움. 그때는 이미 호주에 1년 넘게 거주했고 대충 알건 다 안다고 자부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호주의 모든 카페가 다 이런 메뉴를 제공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브런치가 먹고 싶을 때 굳이 브런치 카페를 수소문해서 찾아다니기보다는 그냥 아무 카페나 가서 커피와 함께 간단한 샐러드를 즐길 수 있으니 상당히 편리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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