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hmad89

프로 여행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 곳에 오래 머물면서 언어와 문화도 같이 배워가는 깊이있는 여행을 추구하는 어느 아마추어 여행자의 이야기

일본/일본 여행지

간사이 히메지 곳곳에 숨어있는 히메지성 찾아보기 :: 오사카 근교 여행

Nohmad89 2019. 5. 16.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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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지[姫路]에서 보물찾기

관서[関西] 또는 간사이[かんさい]라고 불리는 일본의 서쪽. 매년 적지 않은 수의 한국인들이 여행을 하기 위해 찾는 곳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을 많이 찾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거리가 가깝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멀지 않아 비행기를 타고 고작 한두 시간이면 한국어가 통하지 않는 색다른 세상과 만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말에 반짝 또는 주말에 휴가를 붙여 일본의 간사이로 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간사이 지방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는 오사카다. 그렇기 때문에 '간사이 여행 = 오사카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또한 오사카에 교토나 나라를 함께 묶어 간사이 여행을 다녀왔다고 말하기도 한다. 간사이가 얼마나 큰 지역인데 이 빅 3만 다녀와서 간사이 여행에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는 마치 수원과 안양만 둘러보고 경기도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는 것과 같다. 알기 쉽게 우리나라의 지역으로 예를 들어보자면 간사이는 경기도 정도의 의미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간사이 안에는 히메지라고 하는 작은 도시가 있다. 오사카와 그 부근을 소개하는 여행서적에서도 미미하지만 4~6페이지씩은 비중을 차지하는 지역이라 일본 여행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은 들어봤을지도 모르는 이름일지도 모른다. 이 작은 도시는 백로성이라는 별명의 새하얀 외관을 가진 아름다운 히메지 성이 유명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귀중한 시간을 쪼개서 온 여행이라 빅 3에서도 시간이 모자랄 텐데 굳이 인지도도 높지 않은 작은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나는 간사이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있었고 마침 간사이의 빅 4라고 할 수 있는 고베를 여행하고 있었기에 지척에 있는 히메지에도 겸사겸사 다녀올 수 있었다.

 

맞은편에 아무도 앉지 않아서 전철의 창문으로 영화같은 배경을 볼 수 있었다.

사실 솔직히 히메지행 기차표를 끊을 때만 해도 히메지에 대해 아는게 하나도 없었다. 단지 햇빛이 쨍쨍한 맑은 날이면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얗다는 성이 하나 있다는 것 밖에. 인터넷을 찾아봐도 히메지에는 히메지 성 외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없는 것 같았다. 아마 많은 정보가 없기에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신비함이 히메지에 직접 가서 도시 곳곳을 탐험해보고 싶은 내 모험심을 마구 부추겼다. 

 

교외는 한국과 비슷한 느낌.

여행 책자에 보면 히메지는 당일치기로 빨리 갔다가 와야하는 느낌의 장소로 소개되어 있었다. 오사카에서 두 시간 정도 갔다가 두 시간 정도 성을 돌아보고 다시 두 시간 동안 돌아오는 반나절 코스. 아마 시간이 빠듯한 여행객들에게 히메지의 하이라이트인 히메지 성을 빨리 맛만 보여주고 빠지는 코스 같았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한 달이나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기에 굳이 급행열차를 타지도 않았고 반나절만에 히메지 여행을 끝낼 생각도 없었다.

 

8월의 일본은 푹푹 찐다. 한국에 비해 습도도 높아 끈적끈적하다. 이런 날씨에 여행을 하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돌아다녀야 한다. 히메지역에 도착해서 무더운 열기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마음의 준비와 연료 보충을 든든히 하기 위해 일단 배를 채웠다. 여름인데 왜 회덮밥을 먹었는지 이유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냥 먹고 싶으니까 먹었을 뿐. 날씨가 더우니 낮인데도 생맥주가 당겼다. '히메지의 첫인상을 너에게 맡기마'라는 혼자만의 생각으로 생맥주 한잔을 금세 비웠다. 시원한 탄산이 목구멍을 간지럽히며 온 몸에 활기를 준 덕분에 기분 좋게 히메지의 첫인상은 10점 만점에 10점이었다. 

 

일본에서는 이상하게 반주로 마시는 맥주가 진짜 너무 맛있다.
히메지 역 앞 대로. 끝에 무언가가 있다.

히메지 역 앞으로 나오니 생각보다 한산하다. 하필 고베의 쇼핑가를 구경하고 와서 그런지 더욱 비교가 되었다. 생각보다 더 아담하고 조용한 도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히메지 역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앞에는 시원하게 뻗어있는 일직선의 대로가 보였다. 도로의 끝에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데 희미하게 잘 보이지 않았다. 바로 카메라를 꺼내 렌즈 너머로 보이는 피사체에 초첨을 맞추고 확대를 해봤다.

 

히메지 성!

 

대로의 끝에 히메지의 랜드마크인 히메지성이 바로 보인다. 양 옆에 쭉 늘어선 현대식의 건물들과 대조를 이루면서도 꿋꿋하게 가운데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듬직해 보였다. 뭔가 일본만의 느낌이 나서 멋있는 듯하면서도 도심 한가운데 저렇게 큰 성이 있다는 게 무척이나 신기해 보였다. 물론 수원에도 화성이 있긴 하지만 수원의 행궁이나 대문들은 다 일반건물 정도의 비슷한 높이다. 그래서 고층건물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에 가면 그런 건물들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히메지 성은 꽤 성의 높이가 높아서 어떤 골목으로 들어가도 조금씩 성의 윤곽이 보인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애초에 히메지 성은 63 빌딩이나 도쿄타워같은 전망대가 있는 신식 건물이 아니고 400년의 역사가 있는 전통건물이라는 점.

 

신기한 느낌. 멋지다.

확실히 히메지는 도시라고 하기엔 조금 아담하고 시골이라고 하기엔 너무 애매하다. 하지만 불편한 게 없을 정도로 갖춰야 할 건 다 갖추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전통가옥이나 옛 분위기를 아직도 그래도 유지하고 있는 장소가 많기 때문에 신선한 자극을 받고 싶은 여행객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가 아닐까 싶다.

 

옛 분위기가 살아있는 장소들.

히메지에 대한 정보를 더 얻고자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서 지도를 받았다. 큰 지도를 보고 나서야 히메지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성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이유인즉슨 히메지는 히메지 성이 없으면 정말 그냥 아무것도 아닌 특색 없는 시골이 되어버린다. 조그마한 절이며 신사는 일본 전역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거니까 관광지라고 하기는 껄끄럽고, 그 외에는 솔직히 볼 게 없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아담한 도시다. 아마 오사카에서 거리가 조금 가까웠다면 몰라도 급행열차를 타고 왕복 4시간을 투자하면서까지 오사카 성과 비슷하게 생긴 히메지 성을 보러 오지는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아무런 계획이 없던 나에게 이것저것 고민할 필요 없이 히메지성이라는 옵션 딱 하나만 남았다는 사실은 오히려 마음을 개운하게 만들었다. 이틀 동안 있다가 갈 생각이었으니 이틀간 천천히 여유를 부려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 더 천천히 여러 각도에서 히메지 성을 관찰해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마침 또 우연하게도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받은 지도에는 여행자들에게 작은 미션을 부여하고 있었다. 히메지 성은 히메지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주변의 사물을 잘 활용하면 이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가 많으니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시간도 많겠다, 사진이야 내가 더 찍고 싶었던 거고, 오직 이틀간 이 미션만 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히메지 성 포토존 찾기. 숙소에서 무료로 자전거를 대여해 준 덕분에 시내 구석구석을 빠르게 돌아다니며 원하는 사진을 마음껏 찍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자전거를 타고 사진을 찍으러 다니다니. 행복이 두배.

 

히메지성 근처 공원.

공원 한쪽에 아예 사진을 여기서 찍으세요 하고 표시가 되어 있다. 얘들은 얼굴이 용이고 몸통이 잉어인 애들인가. 들어 올린 꼬리 사이로 보이는 흰색의 히메지 성이 뭔가 미니어처 세트처럼 보여서 재밌는 사진. 근처에 나무만 없으면 더 좋았을 텐데. 어느 각도에서 돌려가며 찍어봐도 나무들이 방해가 되는 점은 조금 아쉽다.

 

히메지 시립미술관.

과거 군 시설로 사용되었다는 빨간 벽돌이 인상적인 미술관이다. 근대에 지어진 건물이라 그런지 전통적인 분위기가 살아있는 히메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근대의 느낌이 또 어떻게 보면 멋지다. 뒤편에 굴뚝처럼 솟아있는 히메지성과 대조되는 색과 이미지라 언밸런스하면서도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 같아 꽤 멋지게 찍힌 사진이다.

 

효고 현립 역사박물관.

효고 현립 역사박물관 앞에 도착하고 나서는 벌린 입을 도저히 닫을 수가 없었다. 이게 뭐람. 너무 신기하고 예쁜 거 아닌가. 일본의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이 박물관은 한쪽의 유리로 된 벽 때문에 일본 내에서도 무척이나 유명하다고 한다. 히메지 성의 매력에 푹 빠져있던 건축가는 자신이 설계하는 박물관 한쪽 면에 아름다운 히메지 성이 들어가기를 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붙이기에는 너무 조잡하다고 생각을 한 건축가는 유리에 반사된 히메지 성의 모습을 그대로 베껴오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완성된 역사박물관. 박물관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마치 그 안에 히메지 성이 들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너무 완벽한 설계.

처음에는 무슨 전광판인 줄 알았다. 굳이 뒤에 성이 있는데 전광판을 만들어서 성을 또 보여줄 필요가 있나 했는데 자세히 보니 실시간 촬영을 하는 것처럼 또 하나의 히메지 성이 들어있다. 앉아서 가만히 이 유리벽을 보고 있으면 바람에 흘러가는 구름과 흔들리는 나무 때문에 최면에 걸린듯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근처 언덕에 올라서 찍은 사진.

워낙 성의 높이가 높다 보니 정말 히메지 시 어디에서도 히메지 성이 다 보인다. 잠실 어디에서도 롯데타워가 보이긴 하지만 그거와는 또 뭔가 다른 느낌. 지도에서 추천하는 전망대에 굳이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가서 해가 지고 나서 슬슬 조명이 켜지는 예쁜 히메지 성의 모습을 건졌다. 히메[姫]라는 말이 공주라는 뜻이라서 그런지 히메지 성을 반복해서 보다 보니 자꾸 공주인 양 예쁘다 예쁘다 하고 말하게 된다.

 

야간조명도 환상적.

야간 조명을 받으며 환하게 빛나는 히메지 성을 마지막으로 포토존 찾기 미션은 끝이 났다. 이걸 다 찾아다닌다고 상을 주는 것도 아니지만 개인적인 뿌듯함과 영원히 남게 될 사진을 건졌기에 히메지 여행은 대 만족이다. 어차피 여행에 가서 호텔에서 잠만 자던 밤을 새우고 놀던 내가 만족하면 장땡 아닌가. 아마 여행지에서 다양하고 화려한 유명지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마 히메지가 마음을 울리는 장소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소박하고 수수한 것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히메지가 꽤 마음에 들지도 모르겠다.

 

바닥에 있던 물이 흐려서 아쉽다.

처음에 기대치가 낮아서 그런지 오히려 더 만족했던 히메지. 미리 준비해 놓고 계획을 짜는 건 좋은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인터넷에서 검색을 통해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알고 가는 여행보다는 이렇게 몰랐던걸 하나하나 알아가는 여행이 더 재밌고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만일 또 기회가 있다면 나는 역시나 이틀을 잡고 히메지에 가겠지만 오사카나 고베에서 당일치기라도 갔다 올만한 가치가 있는 일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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