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hmad89

프로 여행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 곳에 오래 머물면서 언어와 문화도 같이 배워가는 깊이있는 여행을 추구하는 어느 아마추어 여행자의 이야기

일본/일본 여행지

일본 간사이의 작은 도시 텐리(天理) 구경하기 :: 천리교의 본부 도시

Nohmad89 2019. 5. 21.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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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간사이 나라현 텐리시

무더운 햇살이 내리쬐는 2016년 어느 여름날의 이른 아침. 오사카 역에서 일본 나라현의 작은 도시 텐리로 향하는 기차 안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인 텐리는 초록창에서 검색을 해도 제대로 된 정보가 거의 나오지 않는 곳이다. 아무리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게 좋다고는 하지만 왜 여행 시간을 쪼개가면서까지 이런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향하고 있을까. 이렇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몇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텐리로 가는 길.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슬슬 정리하면서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다른 아시아 국가 여행을 계획했었다. 여행 계획을 세운 나라중에 일본은 특히 조금 더 길게 여행을 하고 싶었다. 호주에서 일본 친구들 덕에 일본어 실력이 꽤 늘기도 했었고, 한 번도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 특별하게 여행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산은 한정적인데 동남아 국가들보다 물가가 비싸기도 하니 일본 여행은 금전적으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호주에서 우프(WOOFF)라고 하는 제도가 있던 게 불현듯 생각났다. 우프란 시골이나 소도시에서 일손이 필요한 지역을 찾아가 일을 돕고 숙식을 제공받는 프로그램이다. 젊은 사람들이 부족한 지역의 부족한 노동력을 메꾸기 위한 제도이며 호주에서는 이미 꽤 많은 수의 워홀러들이 우프를 하고 있었다. 급여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날짜만큼 단기간으로 일을 할 수 있으며 숙식이 제공되니 돈이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바로 일본 우프 사이트에 들어가 회원가입을 하고 간사이 부근의 농장을 검색했다. 오랜 시간 검색 후에 한 농장의 호스트와 연락이 닿아 이메일로 쭉 연락을 하게 되었고, 일본 여행에 맞춰 열흘간 농장에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소도시인 텐리에 오게 되었다. 

 

텐리역.

텐리역은 정말 한산하다. 오사카에서 나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역이기에 내리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역 앞으로 나와 한 바퀴 둘러보니 작은 도시의 읍내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교통수단이 많지 않은 듯 버스 안내소가 텐리 역 바로 아래에 붙어있었다. 안내소에 들어가 버스시간을 물어보니 내가 타야 하는 버스는 두 시간 반 뒤에나 온다고 했다. 하루에 딱 두 번 있는 버스라 배차간격이 길다고. 농장까지는 텐리역에서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더 들어가야 한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엄청 깊은 시골로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사실 작은 도시인 데다 검색된 정보도 없어 그냥 바로 농장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시간이 예기치 못하게 붕 떠버린 이상 멍하니 앉아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텐리를 한번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버스 시간을 알려준 안내원에게 인사를 하고 난 뒤 텐리에 유명한 음식이 있냐고 물어봤다. 안내원은 괜히 자신이 창피하다는 듯 텐리는 그런 유명한 음식은 없다고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그 대신 자기가 아는 맛있는 돈가스집이 있는데 괜찮으면 어떠냐고 제의를 해주었다. 나는 지역음식도 좋지만 꼭 그걸 고집하는 건 아닌 데다가 일본 현지인이 추천한 음식이라면 꽤나 괜찮을 것 같아 흔쾌히 돈가스집의 주소를 받았다.

 

돈가스는 상당히 맛있었다. 들어갔을때 손님이 한 명도 없어서 불안했는데 내가 들어온 이후로 손님이 밀려들어와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아마 이 지역에서 인기 있는 집이었나 보다. 처음에 손님이 없을 때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쩌다가 여행객이 이 시골까지 오게 되었냐고. 농장에 들어가는 길이라고 하니까 젊어서 그런 일도 하고 대단하면서도 부럽다고 하면서 자기도 나중에 꼭 한번 한국에 가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 소도시 여행은 이런 점이 너무 좋다. 한적한 가게에 가면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면서 가게의 직원들과 얘기도 하고 정보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관광객이 많은 대도시에서는 이런 일이 흔치 않으니까. 배를 채운 후 사장님에게 인사를 하고 든든한 마음으로 가게를 나왔다.

 

최고로 맛있던 돈가스.

작은 도시를 여행하는건 상당히 즐거운 일이다. 천편일률적인 모양새를 한 대도시와는 다르게 작고 아담한 감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교통이 불편할 수도 있고 생각보다 볼만한 무언가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런 단점을 다 덮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지역 여행은 그만의 특별한 묘미가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여행자들이라면 일부러 이런 곳에 오지 않는 한 귀한 시간을 쪼개면서까지 이런 특별한 경험을 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나는 이번에 계획한 일본에서의 한 달 살기가 너무 마음에 든다. 시간이 많으니 어느 하나 시간낭비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다같이 헬멧을 쓰고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귀엽다.

외국이라 그렇게 느끼는건지 텐리가 잔잔한 매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건지, 날씨가 무척 더운데도 일본의 여름은 생각보다 편안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려나. 차도 별로 없어서 그런지 거리가 전부 조용하고 깨끗하게 보였다. 이렇게 보면 여행에서 느끼는 힐링이 꼭 리조트나 근사한 곳에서만 있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평화로워 보이는 텐리에서 생각지 못한 안정감을 찾았으니.

 

여름날의 기운이 확 느껴진다.

한참을 걷다보니 어마어마하게 큰 사원에 도착했다. 그냥 겉으로만 보기에도 일반적인 신사는 아닌 듯했다. 바로 구글 지도를 확인하니 천리교(텐리의 한국식 발음은 천리)의 본당이라고 나온다. 마치 천주교로 따지면 이 곳은 바티칸의 교황청 같은 곳이라는 말이다. 이곳 텐리는 사실 도시의 반이 이 천리교를 믿는 신자라고 한다. 작은 도시지만 꽤 영향력이 있는 종교 도시이고 우리나라에도 일제 강점기 시절 이 천리교가 들어왔다고 한다. 이름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종교라 사이비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신도가 120만이나 된다고 한다. 아무튼 의도한 건 아니지만 한 종교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장소에 와봤으니 한번 쭉 돌아보기로 했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기도를 하는 사람들 몇을 제외하고는 꽤나 조용한 분위기였다. 천리교는 도교를 바탕으로 파생된 종료라 동양 문화권에 친숙해보이는 느낌의 사당을 본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듯했다. 내부에서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을 마주쳤는데 카메라를 들고 있는 여행객이 그냥 지나다녀도 상관없는 듯이 '내부에서 기도를 하고 있으니 큰 소리만 내지 않으면 구경해도 좋다'라고 하고는 금세 사라졌다. 본당이라고 해서 막 전시품이나 종교에 대한 안내문이 있는 건 아니고 정말 본부 같은 느낌의 건물만 있었다. 잠깐 동안의 구경을 마치고 슬슬 임박한 버스시간에 맞추기 위해 다시 텐리 역으로 방향을 바꿨다.

 

텐리교 본당.

다시 돌아온 텐리 역. 역시나 버스 정류장도 한산하다. 고령화가 우리보다 더 일찍 찾아온 일본이라 그런지 곳곳에 젊은 사람보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계셨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이런 소도시는 아예 도시 기능을 잃어버리려나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잠시 하게 되었다. 

 

텐리역전 정류장.

별게 없다고 생각해 관심이 없었지만 잠시 남는 시간을 때우러 돌아다닌 텐리. 뜻밖에 맛있는 점심도 먹게되고 한 종교의 본당도 보게 되어 기분이 색다르다. 관광객들이 잘 찾아오지 않는 소도시를 방문해준 여행자에게 내린 여행 신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일본에서의 농장 생활이 시작부터 잘 풀리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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