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hmad89

프로 여행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 곳에 오래 머물면서 언어와 문화도 같이 배워가는 깊이있는 여행을 추구하는 어느 아마추어 여행자의 이야기

대만/대만 이야기

롯데리아 지파이 :: 대만 지파이랑 얼마나 비슷할까?

Nohmad89 2019. 12. 31.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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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음식 후유증

외국에 오래 거주했던 사람들이나 한국에 오래 거주했었던 외국인이 특정 음식을 그리워한다고 하는 경우를 종종 본 적이 있다. 자국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면 모르겠지만 특정 국가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라면 그 그리운 마음이 더 커지는 법. 특히나 내 입맛에 너무나도 잘 맞는 음식이었다면 그 음식의 이름만 들어도 그 나라에 대한 그리움이 솟구치곤 한다.

 

나에겐 대만과 지파이가 그렇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대만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고 대만 음식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기 때문에 중국어 그대로의 이름인 지파이라고 말해도 그게 어떤 음식인지 아는 사람이 많이 늘어났다. 최근 대만 여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한국에서 2017년의 단수이 카스텔라부터 시작해서 2019년의 흑당버블티의 폭발적인 인기와 성공이 대만 음식에 대한 한국인들의 호기심을 마구 자극한 덕분이다. 한국에서의 이런 대만 음식의 연속적인 성공을 바라보며 눈이 빠지게 오매불망 현지화가 되기를 바랐던 음식이 있었다. 바로 지파이다.

 

한국에 온 지파이

지파이는 닭 가슴살을 튀겨 만든 대만의 길거리 음식이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대만의 어디를 가도 지파이를 파는 가게나 노점상을 발견할 수 있다. 싸게는 45NTD에서 비싼 건 비싼 건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두툼한 닭 가슴살을 그대로 즐길 수 있어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한 간식.

외국인들만 지파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싸고 맛있기 때문에 대만 사람들도 역시 지파이를 무척 좋아한다. 학교 근처에 있는 지파이 노점상은 언제나 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붐비고 야시장에 있는 노점상에서는 현지인들도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 갓 튀긴 뜨거운 닭 가슴살을 받아간다. 전 세계 어디서든 치킨은 항상 옳다는 말이 맞나 보다.

이렇듯 지파이는 대만의 국민 간식이라고 불러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인기 있는 간식거리이다. 그런 지파이가 한국에 상륙했다. 대만에서 하루에 한 번 무조건 지파이를 찾아 먹었던 치킨덕후, 지파이덕후인 내가 어떻게 그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롯데리아 지파이.

그렇게 발에 땀나도록 달려간 롯데리아. 꿈에 그리던 지파이를 눈앞에 두니 다른 메뉴들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얼마나 오리지날 지파이의 맛을 따라 했을지 기대감이 쌓이고 쌓인다. 롯데리아의 지파이는 두 종류. 오리지날 S사이즈(3400원)와 하바네로 L사이즈(4300원 매운맛)가 준비되어 있다. 이왕 먹으러 왔는데 가격이 뭐가 중요한가.

대만에서 행복하게 먹던 지파이의 기억을 다시 되찾고파 라지 사이즈인 하바네로를 주문했다. 지파이를 기다리는 10분 동안의 시간 동안 대만에서 반년 간 거의 매일 먹었던 그 두툼하고 쫄깃하고 바삭바삭한 환상적인 지파이의 맛을 기억해내려고 애를 썼다. 드디어 대기번호가 호명되고 기쁜 마음으로 지파이 세트를 받아왔는데… 이게 무슨…

 

음... 빈약...

‘지파이가 클까? 내 얼굴이 클까?’

 

광고 문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만들었다. 행복회로가 풀가동되고 있을 땐 정말 사람 얼굴만 하구나! 하고 웃으며 봤던 광고가 다시 보니 모델이 가뜩이나 머리가 작은 서양인이요, 어린이다.

당연히 이 서양 어린이들 머리보다는 커야 하지 않나. 이 모델들의 머리가 작은 것인가, 광고에만 큰 지파이를 사용한 것인가, 내 머리가 너무나 커서 지파이가 따라오지를 못하는 것인가. 먹으면서 자아성찰에 들게 하는 대단한 롯데리아다.

 

잡아본 느낌부터가 작다.

일단 작다. 라지 사이즈라고는 하지만 기대 이하다. 꼭 크기가 커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나름7천 원이나 하는 세트메뉴인데 먹고 나서 배가 하나도 차지 않는다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 가격에 이 정도 포만감이라면 돈을 그냥 길바닥에 버린 느낌. 그리워하고 그리워하던 지파이를 먹고 있는데 마음 깊숙한 곳부터 화가 치밀어 오른다.

크기가 작아도 고기가 두툼하니 싸이버거 닭 패티 같으면 이해를 하겠는데 이건 크기를 넓히려고 프레스에다 닭 가슴살을 바짝 누른 건지 살은 거의 없고 앞뒤로 튀김 맛만 진하게 느껴진다. 대만에 가본 적이 없어 지파이를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분들이라면 뭐 그냥 이런 맛의 음식이겠구나 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지파이라는 이름 하나만 보고 온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충격적인 퀄리티가 아닐 수 없다.

 

롯데리아 vs 대만 야시장 지파이. 두께차이가 너무하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를 만나듯 설레었던 마음이었는데 한 순간에 짓밟혀버린 느낌이었다.

다시는 이 돈을 내고 먹을 일은 없을 듯하다. 역시 현지 음식은 현지에 직접 가서 먹어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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