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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골 농가에서 열흘 간 농장 체험 :: 우프 재팬(WWOOF Japan)

일본/일본여행

by 떠돌이 Nohmad J 2019. 5. 20.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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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우프 농장체험

우프(WWOOF).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지도 모르는 국제 교류 프로그램의 이름이다. World-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의 약자로 전 세계의 유기농 농장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농업체험&교류를 할 수 있는 NGO 활동을 의미한다. 나는 운이 좋게 일본에서 한 달간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일본에서의 워킹홀리데이를 해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기에 대신 이번 우프 체험으로 일본 현지의 삶을 직접 느껴보기로 했다. 

 

내가 농장체험을 신청한 농가는 일본 간사이의 나라현에 있는 텐리라는 소도시. 그 도시에서 하루에 두 대 밖에 운행하지 않는 버스를 40분간 타고 들어온 후, 버스정류장에서 호스트의 차를 타고 10분간 더 들어와야 하는 시골 중의 시골이었다. 얼마나 구석에 있는 시골이냐면 이곳에서는 핸드폰 전파가 터지지 않는다. 버스가 하루에 한대 다니던 호주의 깡시골에서도 핸드폰 신호가 E로 잡혀 1분에 카톡을 하나씩 보내기라도 했었는데, 이곳은 전파 자체가 아예 없다. 21세기에도 아직 이런 곳이 있다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처음엔 물론 불편하기는 했지만 점점 시골 생활에 적응하면서부터는 핸드폰을 보는 대신 다양한 것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또한 확실히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으니 사람 간에 대화도 많아지는 듯 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호스트 패밀리와 얼마나 수다를 떨었던지. 

 

우프 하우스.

도착한 곳은 정말 상상할 수 있는 그대로의 일본식 시골집이었다. 뭔가 정말 시골적인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집이라 처음 보자마자 너무 마음에 쏙 들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이런 곳에서 생활해 볼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일본의 전통적인 곳에서 전통 생활방식을 이어가는 사람들과 지내보고 싶어 신청한 우프였기 때문에 현대식 건물이 있었다면 아마 마음 한편에서는 실망감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따로 별실에 주어진 방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바닥에는 일본식 타타미가 깔려있었고 창문 바깥에는 벼가 빽빽이 심어져 있는 새파란 논이 보였다. 

 

가족은 총 5명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호스트, 호스트의 아내, 아들. 호스트 부부는 젊은 시절 해외를 다니며 우프 비슷한 체험을 많이 한 사람들이라 일본에 돌아와서도 그런 경험을 살려 우프 호스트가 되기로 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어린 아들은 산속 시골에 사는데도 불구하고 여러 외국인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 그래서인지 나 말고 호주인 여자가 왔을 때도 호스트의 어린 아들은 겁을 내기보다는 먼저 다가와서 장난을 칠 정도의 여유를 보여주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라 외국인을 대하기 껄끄러워하실 줄 알았는데 우프를 하러 오는 외국인이 많다며 나에게도 스스럼없이 먼저 말을 걸어주셨다. 하긴 아마 영어가 아닌 일본어로 대화를 했기 때문에 부담이 없으셨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성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생활이 익숙지 않았을 텐데 참 대단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프 하우스.

이 우프 농가는 오이 농장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아침 일찍부터 3~4시 정도까지 같이 농장일을 도와야 한다고 했다. 사실 보통 우프는 하루에 3~4시간 정도만 가볍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자연에서 사색을 즐기며 보내는 맛이 있는 건데 하필 농번기에 찾아온 내가 운이 없던 거였다. 농장일이 너무 바빠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하는 시간이 길 수밖에 없었다. 하루 일과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5시 반에 아침을 먹어야 했다. 농장일이 처음이었다면 이 일정을 듣고 아마 까무러쳤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호주에서 농장일을 몇 개월 했던 덕분에 어느 정도 각오는 되어 있던지라 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은 사실 어렵지 않았다. 오이 밭을 돌아다니며 오이만 따면 끝나는 일. 하지만 내가 우프를 진행했던 시기는 8월의 한 여름이었다. 농장일의 난이도는 낮은 편이지만 종일 내리쬐는 땡볕 아래서 일을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그래도 같이 우프를 하게 된 호주 여학생과 같이 수다도 떨면서 일하니 일하는 시간도 재미있었다.

 

농장일을 마치고 나면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다 같이 저녁을 준비하며 가족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우프는 일을 해야 하는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농장일이 주가 아니라 그 나라의 농가에서 호스트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며 문화를 체험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이 끝났다고 바로 방으로 돌아가서 쉬기보다는 호스트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호스트도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었는지 바쁜 아침이나 점심은 힘들어도 저녁만큼은 일본식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가정식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해주었다. 또한 이런저런 체험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었던 덕분에 내가 상상해왔던 것처럼 여러 가지의 만족스러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전날 따고 아침 일찍 포장한 오이들.
많이 팔려라.

하루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윙~ 소리가 나더니 내 어깨에 무언가 달라붙는 느낌이 왔다. 다행히도 나는 벌레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에 나를 갑작스레 기습한 범인을 아무렇지 않게 바로 확인했다. 손에 뭔가 커다랗고 딱딱한 게 잡혀 이게 뭔가 했는데 손에 잡힌 아이는 바로 장수풍뎅이였다. 깨끗한 자연에서만 산다고 하는 녀석인데 이런 곳에서 보게 되다니. 역시 핸드폰 전파가 안 잡히는 지역이구나 싶었다. 이 날 장수풍뎅이를 태어나서 처음 봤다. 항상 책에서만 보던 녀석이었는데 이렇게 영접하게 되니 너무 신기해서 더 관찰하고 싶으니 제발 일이 끝날 때까지 날아가지 말라고 빌었다. 한국어로 말했는데도 용케 알아들었는지 이 녀석은 이후 두 시간이 지날 때까지 내 머리에 붙어 날아가지 않았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부랴부랴 카메라를 꺼내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데도 호스트는 자주 보는 녀석이라며 태연한 말투로 집에 젤리가 있으니 그걸 한번 먹여보란다. 그 후로 이틀간 장수풍뎅이는 같은 장소에서 젤리를 포식하고 난 후에야 사라졌다.

 

장수풍뎅이. 색이 너무 예쁘다.

우프라고 꼭 농장일만 하는 건 아니다. 호스트 가정에서 필요한 일이 있으면 일과시간 동안 같이 도와줄 수 있다. 그렇게 하루는 농장일 대신 집 앞마당에서 우메보시(매실 장아찌)를 햇빛에 말리는 작업을 했다. 우메보시는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이었기에 꽤 기대가 되었다. 이렇게 집에서 직점 담가 정성 들여 말렸으니 얼마나 맛있을까. 사 먹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맛이겠지.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해 본 적도 없는 일을 맡아서 하니 이 작업이 일이라는 생각보다는 문화체험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기분 좋게 할 수 있었다.

 

양이 정말 많았다.

이렇게 담그고 말린 우메보시를 바로 맛볼 기회가 주어졌다. 안타깝게도 내가 만든 건 아니지만 작년에 똑같은 과정을 거쳐서 만들었다는 우메보시. 저녁밥 그릇 위에 하나 올려놓았더니 장식 하나만으로 일본 가정식의 느낌이 확 난다. 하지만 이 날 처음 먹어본 우메보시의 맛에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밥과 같이 먹기에는 너무 새콤달콤했던 것. 과일 사탕 같은 느낌인데 일본식 된장국인 미소와 함께 먹으려니 뭔가 입 안에서 불협화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렇게 바로 포기하기는 아쉽지 않은가. 처음 우메보시를 먹어본 외국인들의 반응은 대개 비슷하다며 일본인중에서도 우메보시를 싫어는 사람이 있으니 괜찮다고 하셨다. 자주 안 먹어봐서 그런 거라는 호스트의 말을 듣고 일단 우메보시와 친해져 보기로 했다.

 

매 끼니마다 밥 한 공기에 우메보시를 하나씩 먹으니 이게 왠지 중독이 되는 듯하더니 일주일쯤 후에는 우메보시의 시큼한 맛을 즐기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얼굴도 찡그리지 않고 밥 한 공기를 뚝딱 해버리니 호스트가 자기네 나라의 전통식을 즐기는 그 모습이 대견했나 보다. 호주 여자애는 한번 먹어보고 손도 안 댔으니 그렇게 보일만도 하다. 호스트는 나중에 우프가 끝나고 헤어질 때 직접 담근 우메보시를 작은 선물상자에 포장해주셨다. 물론 집에 가져가니 가족들은 이걸 어떻게 먹냐고 손도 대지 않아 내가 다 먹어치웠다. 이쯤 되면 정말 문화를 몸으로 직접 배운 것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직접 담근 우메보시.

한국에서 8월 15일은 광복절이다. 하지만 일본의 8월 15일은 오봉이라고 하는 추석 비슷한 명절이다. 마침 내가 이 호스트 하우스에 있던 기간에 오봉이 겹쳐 일본 전통 가정이 오봉을 보내는 방법도 가까이서 피부로 직접 느껴볼 수 있었다. 사실 이 명절은 아예 몰랐었다. 그냥 얼추 추석 비슷한 시기에 여기도 뭔가 있겠지 라고만 생각했었기 때문에 이 오봉은 시골에서 우프 체험을 하게 된 나에게 어마어마한 행운이었다. 당연히 도시의 사람들은 오봉이라고 특별한 전통행사를 하지 않고 넘길게 분명하기에.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 아닐까. 

 

일본의 오봉은 조상들의 영혼을 불러 그 영을 기리는 행사다. 우리나라도 추석에 조상님들에게 드릴 음식을 준비하고 차례를 올리니 거의 비슷한 의미의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저녁 즈음이 되니 할머니께서 짚을 태우고 작은 종을 치며 조상님들의 혼을 불러오는 의식을 거행하셨다. 조용한 시골마을에 청아한 종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지는 광경이 무척 인상 깊었다. 호스트 말로는 이렇게까지 오봉 의식을 하는 집은 도시에서는 이제 거의 없을 거라고 이곳은 시골이니까 이런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할머니가 치시는 저 종 소리가 너무 맑고 좋았다.

어릴 때 명절에 시골에 내려가면 집안 어른들이 한 곳에 모이셔서 온갖 형식에 맞추어 순서를 지키며 차례를 지내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일본의 오봉은 조금 자유로운 편이다. 할머니가 자리에 앉아 염불을 외우시는 동안 손자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다. 내가 어렸을 때 큰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중이었다면 아마 큰 소리로 혼이 났을게 분명하다. 

 

조상님께 드리는 음식은 무척 소박하다. 한국처럼 와서 편히 드시라고 하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상님들의 위패 뒤에는 오이로 만든 말과 가지로 만든 소가 한가득 놓여있다. 오이로 만든 말은 오실 때는 말을 타고 빨리 오시라는 의미고, 가지로 만든 소는 갈 때 소를 타고 천천히 가시라는 의미라고 한다. 한국같이 밥만 먹고 가시는 게 아니라 오시면 2~3일 정도 쉬다 가신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탈것을 본뜬 채소만 남기고 다른 음식은 올리지 않는다고 한다. 꽤 재미있었던 시간이었다. 우프가 아니었으면 이런 경험을 어떻게 해볼 수 있었을까.

 

불경을 외우시는 할머니.
끝나고 떡도 나눠먹었다.

밤이 되자 오봉에 지역 주민들이 모여서 하는 축제가 있다며 호스트가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일본 드라마에만 보던 나츠마츠리[夏祭り 여름축제]였다. 특별히 오봉이라 이날의 축제는 본오도리[盆踊り]라고 했다. 초등학교 운동장 한가운데에 무대를 설치하고 그 주변을 돌며 춤을 춘다. 시골이라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어르신들이었지만 일본 드라마에서 보던 한여름밤의 설렘은 그대로 살아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이 춤도 교육을 받는 건지 많은 사람들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춤을 춘다. 호스트도 나에게 계속 참가해보라고 했지만 몸치인 나는 부끄러워서 춤추는 사람들을 구경만 하는데 만족했다. 어떻게 이런 시골에서도 이런 전통행사가 끊기지 않고 유지가 되는지 정말 신기했다. 우리 할아버지가 사시던 시골도 여기 못지않게 시골 구석에 있는데 난 그 마을에서 이런 지역축제는 단 한 번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이런 전통을 유지하는 일본이 부러웠던 시간이었다.

본오도리!

축제의 중앙에서는 사람들이 춤을 추고 사이드에서는 타코야키, 오코노미야키, 야키소바 등 각종 일본의 음식들을 팔고 있었다. 이미 밥을 많이 먹고 와서 다른 건 아쉽게도 먹기 힘들었고 떡 구이인 당고와 호로요이를 사 먹었다. 호스트와 함께 온 꼬맹이는 야끼소바가 엄청 먹고 싶었나 보다. 계속 엄마의 눈치를 보면서도 사달라는 말을 선뜻 꺼내지 못하고 머뭇머뭇거렸다. 그걸 본 내가 한 접시를 포장해 와서 손에 쥐어줬더니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표정을 지으며 집까지 야키소바를 고이 모셔갔다.

 

꿀맛.

아마 모두가 행복했던 여름밤이었던 것 같다. 한 여름밤의 일본 축제를 이렇게 즐겨보다니 아마 잊을 수 없는 기억일 것이다. 호스트도 땡볕에서 종일 힘들고 지쳤을 텐데 우리를 위해서 이런 행사까지 데리고 나와줬다는 게 너무 고마웠다.

 

집에서 키우는 염소 모리.살다살다 아기 염소 분유도 먹여볼 날이 오다니.

열흘간의 우프 생활은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다른 나라의 현지 식구들과 함께 살면서 여러 가지 문화를 몸소 체험해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숙식이 제공이 되니 열흘간 쓴 돈은 축제에 가서 간식을 먹는데 지출한 게 전부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너무나도 친절했던 호스트 가족을 만나서 지냈던 게 가장 행복했다. 덕분에 여러 귀중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마 나중에라도 시간이 있다면 또 우프 활동을 하면서 여행을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텐리에 들어오던 날과 똑같이 환한 햇빛이 쏟아지던 여름날, 짧은 시간 동안 정이 많이 들어버린 할머니가 몰래 손에 쥐어주신 용돈과 호스트에게 선물 받은 우메보시를 양손에 꼭 쥔 채 마음에는 따뜻한 정을 느끼며 나는 짧은 일본 농가 생활을 마치며 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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