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hmad89

프로 여행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 곳에 오래 머물면서 언어와 문화도 같이 배워가는 깊이있는 여행을 추구하는 어느 아마추어 여행자의 이야기

일본/일본 여행지

고베 근교 가볼만한 곳 :: 우오자키 하쿠츠루 양조장 견학 :: 일본주 사케 박물관

Nohmad89 2019. 7. 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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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친구 덕에 견학하게 된 일본주 주조장

호주에서 알게 된 인연으로 일본을 여행하는 동안 일본 친구의 집에서 지내며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다. 친구의 집은 고베[神戸]에서 가까운 우오자키[魚崎]. 그냥 고베 근교의 작은 마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근처에 일본주 주조장들이 있고 원한다면 내부도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일본 친구가 없었으면 절대 알지 못했을 정보.

 

우오자키역에서 출발해서 10분 정도 걸으니 바로 하쿠츠루 주조장이 모습을 보였다. 사실 그렇게 규모가 큰 박물관은 아니다. 옛 전통방식의 일본주 주조법을 모형을 이용하여 쉽게 알 수 있도록 보여주는 정도. 하지만 입장료도 무료고 다양한 일본주 시음의 기회도 있으니 관광객이 꽤 들리는 장소라고 한다. 오사카/고베 패키지 여행을 하면 항상 일정에 포함되는 곳이라고도 하니 어느 정도 관광객들을 위한 시설이며 콘텐츠가 갖춰졌다고 검증된 곳이 아닐까.

 

일본주 박물관 견학

박물관의 내부는 꽤나 흥미로웠다. 옛날에 전통적인 방식으로 술을 만드는 과정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변화상을 그림과 마네킹을 이용해서 알기 쉽게 보여주고 있었다.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림을 보며 대략적인 주조 과정을 유추할 수 있게 해놓은 부분이 꽤나 섬세한 일본인들의 성격을 보여주는 듯했다.

 

또한 실제 주조과정에 사용되었던 목재 통이나 국자들도 그대로 전시해 놓고 만져볼 수 있게 해서 눈으로만 보는 것보다 훨씬 감각적인 체험을 할 수 있게 해 놓았다. 한편에는 과거의 주조과정에서 발전해 온 현대식의 주조 설비며 과정도 공개해 놓았다. 이렇게 기계를 이용해서 해야 하는 일을 옛날에는 어떻게 사람의 힘으로 했을지 감히 그 고생을 헤아려 볼 수도 없었다.

 

그림을 하나하나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대략적인 주조 과정을 알 수 있다.
과거와 현재의 제조과정/보관법도 비교해 볼 수 있다.

간혹 신사를 둘러보다 보면 사원 한쪽에 일본어로 뭐라 뭐라 적혀있는 둥근 모양의 통들이 쌓여있는 걸 본 적이 있다. 그게 뭔지 궁금하긴 했어도 알 도리가 없었는데, 박물관을 견학하다 보니 그것들과 같은 통들이 여러 개 있는걸 발견할 수 있었다. 신사에 있는 그 통들도 아마 신에게 바치는 공물 같은 개념의 술이었으리라. 적당히 사람 한 명이 등에 이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의 크기부터 사다리를 이용해야 하는 거대한 통과 목욕탕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큰 통까지 여러 종류의 술을 담는 통도 볼 수 있었다.

 

전통 주조 과정을 재현하는 마네킹들.

전시를 중간쯤 보고 나니 마네킹들이 열심히 옛날의 주조 과정들을 재현하고 있었다. 일본의 전통의상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 술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양이 어마어마해서 옛날 사람들은 참 힘들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옛날부터 이 전통을 유지하며 현대까지 쭉 이어왔다는 게 참 대단하다. 한쪽에서는 상인들이 입었던 옷인지 아니면 술을 만드는 사람들이 입던 전통의상인지 잘 모르겠지만 일본풍의 느낌이 확 나는 의상을 빌려 입어볼 수 있었다.

 

체험코너.

원없이 일본주 시음을 해보다

주조장을 한 바퀴 다 둘러보고 나서 출구 쪽에 있는 기념품과 일본주 판매 구역으로 향했다. 냉장고 안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일본주가 진열되어 있었다. 사실 일본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기 때문에 어떤 게 좋은 술인지도 모르고 하나하나 눈으로 감상하기만 했다. 하쿠츠루라는 브랜드가 이름있는 일본주 상표 이름인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단순히 일본주 주조장/박물관이라고 해서 모든 종류의 일본주를 다 모아놓았다고 생각했다.

 

분명 한국의 막걸리며 전통주도 일본주에 못지않은 퀄리티와 역사를 가지고 있을 텐데 이렇게 일본주처럼 대중화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갑작스레 떠올라 뭔가 많이 아쉬웠다. 가격을 보면 한국 전통주나 일본주나 거의 비슷한 가격인데 왠지 일본주는 고급스러운 술을 싸게 사는 느낌이고 한국 전통주는 그냥 비싸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도 뭔가 전통주에 대한 이미지를 더욱 높이고 친근한 이미지로 전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술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해봤다.

 

우측 하단에는 새로 발매되었다는 신제품도 보인다.
기본으로 1만원 이상.

일본주 판매 코너에는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이 카운터를 보고 계셨다. 일본은 요새 고령화 사회라는 문제 때문에 일 할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고 하는데 그래서 어르신도 아직 일을 하시는 걸까 하고 생각하는 사이 일본 친구가 먼저 어르신께 말을 걸었다.

 

"한국에서 온 친구에게 일본주를 소개해주고 싶어서 왔는데 어떤 술이 맛있나요?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만한 술이 있을까요?"

 

그냥 간단하게 저렴한 가격으로 살만한 술이 뭐가 있나 여쭈어보려고 시작했던 질문인데 어르신께서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나를 보시더니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갔다.

 

"! 한국에서 온거야? 나 한국 드라마 진짜 많이 봤어! 그중에서 대장금을 제일 좋아해! 이영애씨가 진짜 예쁘더라. 그 드라마 보고 나서 한국 음식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지금도 한국 식당에 자주 가서 한식 먹어! 한국에서 왔다니 기쁘네. 일본주 관심 있어? 이것도 마셔봐. 이것도, 이것도."

 

한국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신다는 어르신은 마치 귀한 손님이라도 온 마냥 나에게 일본주를 따라주셨다. 술을 구입하기 전에 다들 샘플로 한잔 정도씩은 마셔본다고 해서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한잔을 받았는데 일본주가 맛있다고 말하니 어르신은 신이 나서 카운터를 나와 매대 앞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그러곤 냉장고에 들어있는 모든 술을 한잔씩 따라서 맛보라고 내어주셨다. 만약 내가 술을 못하면 그 자리에서 넙죽넙죽 받아먹은 술 때문에 바로 죽어나갔거나, 주시는 술을 못 마시겠다고 거절해서 분위기가 어색해 질 수도 있었겠지만 다행히 그 날의 나는 컨디션이 무척 좋았고 운 좋게도 꺼내 주시는 모든 술을 맛볼 수 있었다.

 

나가는 길에는 찜통 같은 바깥 날씨에 대비하기 위해 술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샀다. 일반적인 부드러운 소프트 아이스크림인데 끝 맛에서 사케의 알싸한 향이 느껴지는 맛. 아무리 알코올 함량이 적은 아이스크림이라고는 해도 온갖 일본주 시음을 마쳐 오를 대로 오른 내 술기운을 가라앉혀 주지는 못했다. 1년 전 일본 친구와 만났을 때도 호주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종류별로 마시면서 알딸딸한 상태로 놀았는데 1년이 지나고 나서 이번엔 니혼슈를 종류별로 마시면서 알딸딸한 상태로 그 때의 그 친구와 다시 놀고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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