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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캥거루를 무진장 많이 볼 수 있는 곳 :: 퍼스 근교 :: 피날루 메모리얼 파크

호주/호주여행

by Nohmad J 2019. 5. 6.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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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야생 캥거루를 만나다.

호주에 온 지 한참 되었지만 캥거루는 거의 보지 못했다. 마트에서 파는 캥거루 스테이크뿐. 간혹 교외로 나갔을 때 국립공원 보호소에서 보호하고 있는 작은 캥거루 한두 마리를 본 게 전부였다. 이왕 호주에 왔으니 코알라며 캥거루며 호주에서만 잔뜩 볼 수 있는 동물들을 보고 싶었는데 퍼스 시티에서 까마귀와 갈매기만 매일 보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동물원에는 가기 싫었다.

 

공장에서 같이 일하는 할머니들에게 퍼스 근교에 야생 캥거루를 볼만한 곳이 없냐고 물었더니 가까운 거리에 캥거루를 질릴 정도로 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했다. 장소의 이름을 받아 적고 구글 지도 검색을 해보니 퍼스 시티에서 고작 35분. 게다가 기차를 타면 한방에 간다니 주말에 무조건 이곳을 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Whitfords 역. 그냥 허허벌판인데?

휴일에 카메라를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구글 지도가 시키는 대로 퍼스 역에서 준달럽 행 기차를 타고 35분을 달려 윗포드 역에 내렸다.

어? 여기 맞나? 아무것도 없는데? 

정말 말 그대로 허허벌판인 곳에 역이 딸랑 있었다. 도대체 왜 여기 역을 만든 건지 정말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다. 역 바로 옆에 있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들을 제외하고는 근처에 움직이는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1.2km를 이런 아무것도 없는 길을 걸었다.

너무나 황당한 기차역의 분위기에 당황해서 바로 구글 지도를 다시 살폈다. 확실히 역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고 한참 걸어 나가면 큰 공원이 있다고 나와있었다. 구글 지도는 언제나 100% 믿을 만 하기에 이번에도 구글 지도의 말을 믿기로 했다. 아무것도 없는 고속도로의 갓길을 15분 정도 걸으니 피날루 메모리얼 파크라고 쓰여있는 안내판이 보였다.

 

피날루 메모리얼파크.

사실 이런 곳에 오는 게 썩 즐겁지는 않다. 다른 사람들에겐 떠나보낸 누군가를 슬퍼하고 그리워하며 그리는 곳일 텐데 나는 관광을 하러 카메라를 들고 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 역시 한국에 있는 메모리얼 파크에 가족을 모시고 있는 입장이라 외국에서의 추모는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궁금한 마음도 들었기 때문에 거북한 마음에 대한 변호를 스스로 할 수 있었다.

 

추모공원이라 하기엔 화려하게 꾸며놓았다.

공원에 들어가니 여기저기에 꽃이 가득했다. 멀리서 봤을 땐 그냥 공원을 꾸며놓은 꽃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모든 꽃들 하나하나에 명패가 같이 달려있었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패였다. 그 위에 꽃을 두어 표시를 한 것 같았다. 공원이 제법 컸는데 빈틈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꽃들이 빽빽이 놓여있었다. 아마 유해는 따로 처리를 했거나 묻어두었을 거라 추측이 된다.

 

어느 자리가 제일 비쌀까.

캥거루를 보러 온 처음의 계획도 잊은 채로 천천히 공원을 감상하며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 확실히 비석을 세워둔 것보다는 이렇게 자연 속에서 꽃으로 장식을 해 놓으니 사람이 없는데도 스산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국의 추모공원은 납골당 건물에 유골을 가득 채워 넣어 으스스하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는 곳이 많은데, 땅이 넓으니 이렇게 큰 공원부지에 여유롭게 메모리얼 파크를 조성해 놓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괜스레 부러워졌다.

 

이 명패는 왜 나무 하나를 혼자 차지하고 있을까? 아마 다른 자리보다 비싸겠지?

 

메모리얼 파크 지도. 캥거루를 보려면 우측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

한참 공원을 걸어 다니다가 문득 '분명 캥거루가 있는 공원이라고 들었는데 왜 한 마리도 없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공원에 캥거루가 있을 리가 없을 텐데. 지도를 보니 난 이미 공원을 반쯤 온 상태였다. 반쯤 오는데도 꽤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나는 아는 사람도 없는데 이 추모공원을 굳이 끝까지 돌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본 순간...

 

!?

니들이 거기서 왜 나와??

 

요염한 자세의 캥거루.

엄청나게 많은 수의 캥거루들이 뛰어오더니 자리를 잡고 눕기 시작했다. 여긴 분명 동물원이 아니고 저 녀석들은 여기서 키우는 녀석들이 아니다. 그렇다는 말은 저 녀석들은 전부 야생 캥거루라는 말. 너무 뜬금없는 상황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여태 캥거루 보고 싶다 캥거루 보고 싶다 노래를 불렀는데도 보기 힘들었던 녀석들을 이런 공원에서 갑작스레 만나게 되다니. 게다가 이렇게나 많이!

 

묫자리 주변에도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닌다.

분명히 역에서부터 걸어오면서 울타리 같은 건 보지 못했다. 그런데 어디서 이 녀석들이 기어 나온 걸까. 게다가 내가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어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아마 추모하러 온 사람들을 자주 봐서 그런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오히려 사진을 찍으러 온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캥거루를 본 적이 없었기에 살짝 무섭기도 했는데 이 녀석들이 날 경계를 안 하니 오히려 나도 경계를 줄이게 되었다.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는게 이 정도. 앞뒤좌우 더 많은 캥거루가 있었다.

마치 캥거루 천국에 온 것 같았다. 대충 보기에도 수십 마리의 캥거루가 막 뛰어다니고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비현실적인 광경에 눈 앞에서 보고 있던 나도 이게 몰래카메라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핸드폰으로 친구들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니 다들 합성사진 아니냐고 사기 치지 말라는 핀잔이 돌아왔다. 유명한 동물원에 가기보다 할머니들 말을 듣고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졌다.

 

엄마 캥거루 배에 들어가 있는 아기 캥거루.

중간중간 엄마 캥거루들을 쫓아다니는 귀여운 아기 캥거루들도 보였다. 아직 사람이 낯선지 카메라를 들고 다가가면 잠시 관찰하는 척하더니 엄마에게 도망가기 일쑤였다. 그래도 가까이에서 엄마 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아기 캥거루들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귀여운 아기들 사진을 건졌으니 대단히 만족스러운 출사.

 

캥거루가 보고 싶을 때 자주 갔으면 좋았을 텐데 거리보다는 장소가 장소인지라 자주 찾아갈 수 없었던 피날루 메모리얼 파크. 그래도 퍼스에 와서 여행을 하다가 어마어마한 수의 캥거루들을 보고 싶다면 이곳에 와서 조용히 산책을 해보는 것도 좋은 계획일 것 같다.

 

오랜 시간 조용히 혼자 책을 읽으시던 어르신. 쓸쓸하면서도 기품있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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