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hmad89

프로 여행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 곳에 오래 머물면서 언어와 문화도 같이 배워가는 깊이있는 여행을 추구하는 어느 아마추어 여행자의 이야기

필리핀/필리핀 여행지

우리가 잘 모르는 세부 시티 산책 :: 로컬 세부를 둘러보다

Nohmad89 2019. 5. 15. 16:09
반응형

세부 시티 당일치기 여행

한국인들에게 필리핀의 세부는 휴양지의 느낌이 느껴지는 도시다. 세부라는 말만 들어도 눈 앞에 넘실거리는 포말을 머금은 파도와 흰 백사장을 자랑하는 해변가, 길게 늘어진 야자수와 그늘 아래에 누워 코코넛 주스를 마시는 상상을 하게 된다. 나 역시 세부 하면 그런 이미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직접 와서 탐험을 하기 전까지는.

 

안타깝게도 앞뒤 일정에 맞추다 보니 세부 시티에서의 모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하루가 주어졌다. 애초에 세부 시티는 필리핀 여행 일정에 넣지도 않았었는데 비행기 시간을 맞추다 보니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건 새로운 장소에 떨어졌고 하루라는 시간이 주어졌으니 남들 다 가는 쇼핑몰이나 관광객들의 필수코스를 찾아다니기보다는 쉰다는 마음으로 발길 가는 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사실 숙소까지 택시를 타고 오면서도 휴양지의 세부가 아닌 도시 한가운데의 세부를 즐길 수 있을까 망설였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은 관광지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정말 그들의 풍족하지 않은 삶이 그대로 느껴지는 풍경이 대부분이었기에 관광할 곳이 없을지 모른다는 걱정보다 과연 여행을 해도 괜찮은 곳인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호주에서 친하게 지내던 필리핀 친구에게 마닐라는 자기도 조금 무서워서 굳이 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괜스레 몸을 더 움츠리게 되었다. 수도인 마닐라도 그 정도라면 이 세부 변두리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하지만 세부 시티를 여행했다는 블로그 게시글도 꽤 많았고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긍정적인 의견이 많았기에, 사람이건 도시건 겉모습으로만 판단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카메라와 핸드폰, 약간의 현금만 챙겨 길을 나섰다.

 

아이 러브 세부. 미투.

공항에 가려는 시간을 위주로 계획을 짜다 보니 숙소는 세부 시티의 한가운데가 아닌 약간 바깥지역으로 잡을 수밖에 없었다. 밖을 나오자마자 시티 중심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확연히 중심과는 다른듯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사람은 많지만 번화가는 분명히 아닌 느낌. 그래도 오히려 그 덕에 조금 더 필리핀 같은 필리핀의 느낌과 마주할 수 있었다. 거리에 끝없이 늘어선 가판대와 상인들이 마치 20년 전 우리 집 근처에 있던 재래시장 분위기를 풍겼다.

 

아시아 어느 나라나 이런건 비슷.

너무 재미있었다. 불과 1시간 전만 해도 숙소를 나오면서 불안해하며 무슨 일이 생기면 전속력으로 도망가기 위해 안 신던 운동화까지 신고 나왔었는데 잠깐 동안 정말 세부 현지인들의 모습을 보고 나니 이상하게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세부의 또 다른 비밀을 나 혼자 알게 된 듯 한 느낌이었다. 정말 여행 가이드나 인터넷 블로그에서 세부를 찾아보면 전부 파란 하늘과 바다가 보이는 리조트에서 찍은 사진만 봤기 때문에 세부는 전부 그런 곳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역시 아직도 세상에 눈으로 봐야 할 곳은 많고 난 아직 우물 안 개구리인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한창 주변을 구경하며 걷다 보니 금세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주변에 식당 같은 건 보지 못한 것 같아 유심히 간판들을 살펴봤는데 마침 한 간판이 눈에 띄었다. 전에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후배가 하나 있었는데 그 후배가 필리핀에 가면 꼭 가보라고 추천한 가게였다. 어떻게 그 상황에서 그걸 떠올렸는지 역시 배가 고프면 사람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나 보다.

 

졸리비를 찾았다.

가게의 이름은 Jollibee. 호빵맨에 나오는 세균맨의 여자 친구처럼 생긴 마스코트가 빵모자를 쓰고 있는 곳이다. 졸리비는 필리핀의 현지 브랜드라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후 우리나라에도 들어온 까르푸가 이마트라는 국내 브랜드에 밀려 맥을 못 춘 것처럼, 전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있는 맥도날드가 사실 필리핀에서는 현지 브랜드인 졸리비에 밀린다고 한다. 이 정도로 어마어마한 곳이라면 패스트푸드인 게 뭐가 중요한가, 일단 가서 도전해봐야지. 평소에 여행 다니면서 프랜차이즈는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필리핀에서는 그 금기를 한번 깨보기로 했다.

 

졸리비에 들어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줄을 섰는데 뒤통수가 따갑다. 아니 앞통수도 따갑다. 여기저기서 나를 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피부색으로 사람을 나누는 건 싫어서 그런 표현은 안 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여기서는 분명 내가 피부색이 다른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내가 척 보기에도 나 빼고는 전부 필리핀 사람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저 외국인이 왜 여기까지 와서 이걸 먹지라는 물음들이 말을 하지 않아도 느껴졌다. 하기사 밖에서 돌아다닐 때도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계속 나 하나였으니. 시티 중심이 아닌 변두리라 아마 더 한 듯싶다.  

졸리비 세트메뉴.

메뉴가 정말 다양하다. 햄버거는 기본이고 스파게티, 팬케이크, 핫도그, 치킨, 밥, 심지어 스테이크까지 판다. 어떤 걸 먹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안 잡혀서 가장 많은 메뉴가 섞인 것 같은 세트를 시켰다. 생각보다 양도 푸짐한데 가격도 저렴하다. 하지만 필리핀에서 졸리비는 일반인들 임금에 비해 비싼 축에 속하는 곳이라고 해서 누구나 쉽게 올 수 있는 곳은 아니라고 한다. 마치 우리나라에 경양식 레스토랑이 생겨날 때와 비슷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렇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가족단위 손님이나 생일파티를 하고 있는 어린이들 그룹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맛도 괜찮았기에 왜 필리핀에서 인기가 많은지 알 수 있었다.

 

우연치고는 잘 왔다.

꽤 만족할만한 식사를 마치고 한참을 걷다 보니 여행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붐비는 장소에 오게 되었다. 뭐 하는 곳일까 해서 구글 지도를 켜봤더니 마젤란의 십자가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운이 좋았다. 생각지도 않게 관광명소까지 흘러와 버렸으니.

 

아마 여행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 중 하나가 이런 상황이 아닐 듯싶다. 계획하지 않은, 생각지도 못한 우연한 발견. 마치 내가 기대했던 것은 이만큼인데 그보다 더 한 선물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다. 여행 중 이런 즐거움은 그 지역에 대한 호감도도 오르게 하는 신비한 힘이 있다. 세부 시티에 처음 들어왔을 때 세부에 대한 살짝 못 미더웠던 내 마음은 우연히 졸리비를 먹고 나서 호감으로 바뀌었고 이 곳을 우연히 찾게 되면서 대만족으로 변해버렸으니 말이다.

 

마젤란의 십자가.

1500년대 마젤란이라는 모험가가 세계 탐험을 할 때 필리핀에 상륙해 종교를 전파했다고 한다. 그때 처음 세례를 받게 된 필리핀인들을 기념하기 위하여 마젤란이 십자가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십자가의 상단에는 그런 모습들을 그려 넣은 벽화가 남겨져 있다. 원래는 해안가에 세워졌던 십자가지만 사람들이 이 십자가에 기적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고 믿은 탓에 꽤나 훼손이 되었다고 한다. 십자가의 일부분을 떼어내어 달여 마시면 병이 낫는다던가 하는 미신들. 그렇기에 훼손을 막고자 이렇게 성당 근처로 옮겨 와 보호를 한다고 한다.

 

성당 내부.

필리핀은 국가 80% 이상의 사람들이 가톨릭교를 믿는다고 한다. 또한 그 믿음이 상당히 강하기 때문에 평소에도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날 역시 평일 오후였는데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성당을 방문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엄마의 손을 붙잡고 신에게 인사를 드리고 가는 작은 아이의 모습이 보는 내 마음도 한결 너그러워지게 만든다. 

 

해가 떨어진 세부시티의 모습.

반나절밖에 되지 않는 짧은 일정의 세부 탐험.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보니 유명한 장소들을 다 다녀볼 수는 없었지만 꼭 남들이 다 가는 데를 가보는 게 여행은 아니니까. 각자만의 여행 스타일에 맞춰 만족을 얻게 되면 그게 여행이다. 나에게는 이런 뒷골목을 돌아다니며 현지 사람들의 평범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일상을 보는 것 또한 여행에서의 설렘이기에 여태 내가 몰랐던 세부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어 무척 즐거웠던 여행이었다.


2019/05/13 - [필리핀/Cebu] - 세부 보홀섬에서 스킨 스쿠터 다이빙 자격증 따기 :: 스쿠버 다이빙 오픈워터 :: 인생 버킷리스트

2019/05/14 - [필리핀/Cebu] - 세부 보홀 발리카삭에서 스킨스쿠버 다이빙 ::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이빙 포인트 :: 바다 거북이와 만나다

2019/05/15 - [필리핀/Cebu] - 세부 보홀에서 일주일 살기 :: 천국같은 팡글라오섬의 알로나 비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