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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홍콩 여행지

현지인들에게 애정을 가득 받는 홍콩의 뒷 정원 사이쿵

by Nohmad89 2024.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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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쿵[西貢]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피곤하고 지친 삶을 치료해 주는 힘이 있다. 그래서 따분한 일상과 삶에 지친 사람들은 살아갈 힘을 얻고 재충전을 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그렇게 떠난 여행이 항상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기운을 북돋아주지는 않는다. 언어의 장벽에서 오는 불안감과 두려움도 있을 것이고, 단기간의 여행 일정에 맞춰 가능한 많은 장소를 알차게 방문하려고 빡빡한 스케줄을 만들어 오히려 여행 중에 방전이 될 수도 있다.

 

이렇듯 여행이 무조건 힐링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대도시에서 벗어나고 싶어 일주일간 여행을 하는데 일주일 내내 나라만 바뀐 대도심 한가운데만 있는 일정의 여행이라면 신체적으로 무리가 없을지언정 정신적으로는 피로가 쌓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행 일정 중에서도 컨디션 조절을 위해 휴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홍콩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사이쿵은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다면 꼭 가보길 추천하는 곳이다. 바쁘고 빠르게 시간이 흘러가는 홍콩에서 긴장을 풀고 천천히 느긋함을 즐길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마치 바쁜 도시생활 중 지쳐가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평화로운 시골 고향으로 내려온 듯한 안정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사이쿵 피어

 

사이쿵을 가려면 홍콩 도심에서 한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홍콩을 여행하러 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의 이유는 쇼핑과 미식이기 때문에 사이쿵까지 오는 여행객은 정말 드물다. 애초에 바다나 해변을 보고 싶으면 더 가깝고 좋은 선택지가 홍콩 내에 많기도 하고, 그런 곳에 가기를 기대했으면 굳이 홍콩에 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이쿵은 한적하면서 조용하고 아릅답다.

사이쿵의 어민들이 사용하는 어선들이 빼곡히 부두에 들어와 있다

 

사이쿵 주변에는 지질학적으로 유명한 지질공원도 있고, 호핑투어가 가능한 섬들이 많아 액티비티를 즐기러 오는 여행객도 은근히 많다고 한다. 하지만 사이쿵은 단지 배를 타기 위한 거점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생각만큼 메인 번화가가 발전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시골 어촌의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해 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사이쿵 부두를 걷다 보면 정박해 있는 어선들, 여유롭게 유유자적 낚시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갈치 떼를 연상케 하는 기다란 드래곤 보트들을 볼 수 있다. 카누랑 비슷하게 생겼지만 중화권 국가들의 문화재인 이 드래곤 보트는 무려 16명이 동시에 타서 달릴 수 있다고 한다. 조용한 사이쿵은 무척 마음에 들었지만 드래곤 보트를 타는 장면을 보지 못한 것은 살짝 아쉽다.

 

사이쿵 바다에 드래곤 보트가 이렇게 많이 정박해 있는 이유가 있다. 바로 단오절이 되면 드래곤 보트 페스티벌이 바로 이곳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보트들이 사이쿵 앞바다를 가득 메우며 참여하는 선수들과 지역 주민들 그리고 관광객들이 한데 모여 성대한 축제를 벌인다고 한다.

 

페스티벌은 매년 5월 말~6월 초에 열리며 사이쿵뿐만 아니라 툰문, 타이오, 리펄스 베이에서 동시에 볼 수 있다(빅토리아 하버에서는 7월).

파스텔 톤 드래곤보트가 풍경과 무척 잘 어울린다
주행 장면을 봤으면 좋았을텐데

 

드래곤 보트를 지나 조금 더 걷다 보면 샤하해변이 나온다. 해수욕장의 모습을 갖추고 있긴 한데 앞바다가 살짝 서해안 같은 스타일의 해변 느낌이다. 모래보다 돌과 자갈이 조금 더 많은 느낌. 그래서인지 한 여름에 사이쿵을 방문했음에도 해수욕을 즐기고 바다에 들어가서 노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경치 하나는 정말 아름답다. 지형 상 바다 앞으로 툭 튀어나온 지역이 아니고 안으로 들어가 있는 지형인 데다가, 근해에 섬이 정말 많이 있어서 쭉 펼쳐지는 수평선은 기대할 수 없다. 그래도 섬들 하나하나가 모여 저 멀리 초록빛의 근사한 배경을 만들어 주고 있기에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섞여 있다면 그 무엇에도 뒤지지 않을 완벽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샤하비치에서 본 바다
샤하비치에서 본 바다 2
유유자적

 

 

 

여기 홍콩 맞아? 동남아에서 볼 법한 물고기 상인

 

사이쿵의 메인 거리 앞에서는 바다를 볼 수 있지만 한적하게 여유를 부리며 시간을 보낼만한 곳은 아니다. 해변이 아니고 부두이기 때문이다. 정박해 있는 고기잡이 어선들이 한가득 모여있고 길바닥에는 어부들의 장비들이 널브러져 있어 천천히 바다를 감상할 여유가 주어지는 곳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부둣가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는 장소가 있다.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카메라를 들고 여행 배낭을 메고 있는 관광객도 삼삼오오 모여있다. 저 멀리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수평선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다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부두 밑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무언가 이벤트가 있을 확률이 높다

 

부두 아래에서는 현지 상인이 직접 잡아온 신선한 해산물을 배 위에서 판매하고 있다.

상상하지 못했던 광경에 기분은 최고

 

도심에서 꽤 떨어진 시골마을이라 그런지 상인들이 영어에 능숙하지는 않다. 하지만 여행객들과 손가락으로 숫자를 만들어가며 간단한 영어로 거래가 이루어진다. 양 측 의견이 맞으면 상인은 긴 막대를 사용해 신선한 물고기를 담은 봉투를 뜰채에 담아 올려주고, 상품을 받은 구매자는 뜰채 안에 돈을 넣어서 내려 보내준다.

 

누군가 해산물을 구입해 긴 막대기가 오르락내리락하면 근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단지 어촌에서 이루어지는 간단한 해산물 거래일 뿐이지만 이색적인 광경으로 인해 여행객들에게는 즐거운 볼거리가 된다. 나도 해산물을 직접 구매하지 않았지만 이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놓치기 아쉬워서 한동안 부둣가를 떠나지 못했다.

 

다만 당일 잡아 신선함을 보장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 비해 해산물의 가격은 조금 비싸다고 한다. 그래도 부두에서 산 해산물은 근처 해산물 거리에서 바로 요리해 먹을 수도 있다고 하니, 신선한 바다의 맛을 바로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겐 최고의 선택지가 아닐 수 없다.

떨어질까 조마조마
종류가 정말 다양하다

 

 

 

한적한 타운

 

버스 정류장이 있는 메인 거리를 포함한 사이쿵 뒷골목에선 한적하고 여유 있는 시골 어촌 마을의 그대로가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잘 정돈된 상점들이 늘어서 있어 해변가의 두근두근한 분위기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아기자기한 집들이 많은 사이쿵의 뒷 골목
한치일까? 작은 오징어들을 건조하고 있다

 

바닷가 어촌이라 그런지 길거리에 해산물을 내놓고 말리고 있는 집이 많다. 나라마다 잡히는 어종이 다르고 건조방식도 다르기 때문에 이런 장면은 그들의 평범한 일상이지만 해외에서 온 이방인에게는 신기하면서도 좋은 볼거리가 된다. 바다의 소금기를 가득 머금은 해산물에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짭짤한 바다내음이 풍기는 즐거운 기분은 덤이다.

 

관광객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도 곳곳에 기념품이나 엽서를 파는 곳이 많이 있다. 아기자기한 상점에서 홍콩의 분위기가 가득 담겨있는 포스트 카드를 골라봤다. 평소 여행 중에도 엽서는 쓴 적도 없고(쓸 장소도 시간도 없었지만) 사이쿵에서는 이런 여유를 가져보고 싶었다. 바다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지니 여행의 감성을 누군가에게 전달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별거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낭만적인 일

 


 

한국에서도 한옥마을은 정말 유명하고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이다. 한옥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은 경복궁 옆 북촌한옥마을. 하지만 북촌은 이미 너무 유명해졌고 오버투어리즘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여행객 포화상태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힘겨워할 정도로 시끌벅적하게 변해버렸다.

 

이 틈을 노려 상황파악이 재빠른 한국인들은 북촌 대신 서촌을 공략했다. 북촌만큼은 아니지만 적당히 한옥이 들어서 있어 한옥마을의 분위기는 그대로 가져가고, 골목골목 아기자기한 카페나 디자인 소품샵이 있으며 분위기 좋은 식당이 곳곳에 숨어있는 휴식처가 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정보가 많이 퍼져 외국인들도 서촌을 많이 찾긴 하지만 서촌은 상대적으로 북촌보다는 아직 널널하고 여유 있게 조용한 휴식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나에게 사이쿵은 홍콩의 서촌 같은 곳이다.

어촌마을의 메인로드

 

교통의 발달로 이미 세계의 구석구석 여행객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사라졌고, 조금이라도 예쁘고 볼거리가 있는 지역에서는 수많은 여행객들이 넘쳐흘러 들어와 조용한 여유를 찾기 힘들게 되었다. 하지만 사이쿵은 아름다운 바다와, 볼거리를 다 가지고 있는 휴식처임에도 홍콩 도심의 커다란 매력에 살짝 가려져 뒤편에 숨어 있는 감춰진 보석 같은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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