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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홍콩 이야기

중국어? 영어? 홍콩에서 외국어 사용시 주의해야 할 점

by Nohmad89 2024.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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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의 언어 사용


2017년 무더운 여름의 한 가운데.

 

그 당시의 나는 5개월가량 대만 섬 전역을 한창 여행하고 있던 중이었다. 처음부터 대만에서 이렇게 오래 여행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비자에 관한 계획은 전혀 염두하지 않았었고, 더 여행을 길게 하려면 다른 나라를 거쳐서 다시 대만에 입국하는 비자런은 필수였다.

 

어디를 가면 좋을지 고민하던 차에 홍콩이 눈에 들어왔다. 철없던 20살에 가본 첫 해외여행의 희미하지만 두근두근한 설렘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도하고, 몇 개월 간의 대만 생활 덕분에 유창하지는 않지만 여행에 필요한 기본적인 약간의 중국어를 더듬더듬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흘러넘쳤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설렘을 가지고 오랜만에 간 홍콩 여행은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사람들은 별로 친절하지 않았고, 내가 주문한 음식들은 대부분 늦게 나오거나 맛이 없었으며, 여행 내내 환영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조금 더 홍콩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나름 못하는 중국어도 사용해 가면서 노력했는데 내 노력이 전혀 존중받지 못하고 무시당한다고 생각했다.

 

역시 첫 해외여행에 대한 기억이 시간을 지나며 미화되어 좋은 이미지만 남아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고 다시는 홍콩 여행을 가지 않을 거라는 살짝 삐친 마음이 담긴 다짐 아닌 다짐을 했었다.

 

그렇게 일주일 간의 홍콩 여행을 마치고 대만으로 다시 돌아와 만족스러운 여행을 하면서 비교적 불만족스러웠던 홍콩에서의 시간은 머리 속에서 금방 희미해졌다.

중국어로 주문해서 그랬던건지 늦게 나오고 맛도 없었던 고기 덮밥

 

그리고 2년 뒤 2019년, 홍콩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뉴스에서는 연일 무력으로 시위대를 진압하는 중국 경찰과, 그들에게 대항하며 중국이라는 거대 세력을 온몸으로 저항하는 홍콩 사람들이 보도되었다. 순간 불현듯 홍콩에서의 기억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생각해 보면 ‘광둥어는 못하더라도 중국어의 지방 방언이니까 오히려 표준 중국어를 사용하면 홍콩 사람들이 영어를 사용하는 것보다 더 좋아하겠지?’라고 독단적으로 판단했었다. 그래서 어디서든 충분히 영어가 가능한 곳에서도 손짓 발짓 써가며 초급 중국어를 사용하기 위해 애를 썼고, 홍콩 사람들이 친절하게 반응해 주지 않는 이유도 내 낮은 중국어 실력을 이해해 주지 않고 무시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상황이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이렇게 예를 들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한국의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외국인이 한국 여행을 하면서 ‘한국은 예전에 일본의 식민지였으니 어찌 보면 역사의 일부고 실제로 일본어 가능한 사람이 많지 않아?’라고 주장하며 일본어만 계속 사용한다면 나 같아도 친절하게 대하지 못할 것 같다. 당연히 그 외국인이 한국어는 전혀 하지 못하고 약간의 일본어만 가능하다는 전제가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 상상만으로도 화가 나는 상황이다.

 

물론 홍콩에서 중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던가 금지되는 상황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법적으로 인정된 홍콩의 공용어는 표준 중국어영어이다. 다만 홍콩인들은 ‘자신들은 중국인이 아니다’라는 사고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언어 역시 확연히 다르다. 80,90년대 유행했던 홍콩 느와르 영화에 나오는 약간은 센 억양을 가지고 있는 언어가 바로 홍콩의 언어다.

 

법적 인정과는 다르게 현실에서 대다수의 홍콩 사람들은 법적 공용어가 아닌 광둥어(캔토니스)를 사용하고 있다. 모국어와 법적 공용어가 다르다는 것은 한국인에게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중국어를 공부한 적 없는 사람들은 홍콩의 언어도 중국어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만 중국인은 홍콩의 캔토니스, 즉 광둥어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홍콩 사람들에게 중국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사투리와 표준어’ 간의 관계 의미와는 전혀 다른 것이 되어 버린다. 당연하게도 중국어를 전혀 못하는 홍콩 사람도 많다.

 

지금은 양국이 기존부터 유지하던 1 국가 2 체제에서 중국 정부의 주도하에 따라 홍콩도 공산화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홍콩도 이제 중국이 아닌가? 그럼 중국어도 그냥 사용해도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체제가 바뀌었다고 해서 홍콩에 살던 홍콩시민들이 하루아침에 쓰던 언어를 버리고 새로운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중국어 화자는, 특히 여행객이라면 더더욱 홍콩에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한 여행 유튜버가 홍콩에서 중국어와 영어를 각각 사용할 때 홍콩 사람들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실험하는 영상을 게시했다. 당연히 결과는 중국어 화자에 대한 압도적인 불친절.)

 


 

 

이 게시글을 작성하면서 홍콩 사람은 언어에 따라 사람을 차별한다던가, 여행객에게 친절하지 않다던가 하는 홍콩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드러내려는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정말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홍콩 친구들을 여러 명 알고 있고, 첫 홍콩 여행의 기억은 분명 그 어느 나라보다 좋았었다.

 

하지만 우연의 일치랄까 내가 아는 홍콩 친구들은 전부 광둥어뿐 아니라 보통 중국어도 전부 가능한 사람들이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나는 홍콩 사람들 대부분 중국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조금 배운 중국어를 여행지에서 자랑하고 싶다는 마음과 국제 정세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던 나의 무지로 인해 생겨난 하나의 여행 해프닝이 이렇게 완성되었다.

 

물론 어느 나라를 여행할 때마다 그 나라의 뜨거운 이슈라던가 국민 정서에 대해 하나하나 완벽히 숙지해서 갈 수는 없다. 다만 그런 문화의 차이가 나는 부분에서 상호 간의 오해가 생기고 특정 나라에 대한 반감이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이 발생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이 문화 차이고 여행을 통해 견문을 넓혀가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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