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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홍콩 이야기

움직이는 랜드마크 그 자체인 홍콩 여행의 꽃, 홍콩 트램

by Nohmad89 2024.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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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트램[香港電車]


관광버스를 타거나 놀이기구를 탈 때 나는 항상 맨 앞자리에 앉는 걸 선호한다.

 

어릴 때부터 앞자리가 제일 좋았다. 양 옆도 넓게 볼 수 있고, 탁 트인 앞 시야를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지금도 그런 앞자리 경쟁이 생기면 어린아이들과도 치열한 눈치싸움을 하곤 한다.

 

하지만 홍콩에서는 힘들게 매번 그런 눈치 싸움을 할 필요가 없었다.

 

 

홍콩 트램

 

홍콩에 오기 전에는 홍콩 여행 내내 치열한 나만의 작은 전쟁이 계속 벌어질 거라 생각했다. 홍콩 관광의 꽃, 2층 트램은 충분히 그 앞자리를 차지할 가치가 있으니까.

 

하지만 주위 모든 여행객을 잠재적 적으로 인식하며 눈치싸움을 준비하던 내 예상과는 달리 여행 내내 편안히 2층 맨 앞자리에서 홍콩 시내를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오히려 여행의 막바지에는 앞자리를 기대하는 다른 어린이 여행자들에게 쿨하게 앞자리를 양보하는 국제적 매너를 선보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의 홍콩 이미지

 

이유는 간단하다. 요금이 저렴하고 엄청 자주 오니까.

 

홍콩 트램의 이용 가격은 대단히 저렴하다. 2024년 기준 원화 400원 정도면 목적지와 관계없이 트램을 탈 수 있다. 교통비가 저렴하기로 유명한 우리나라와 비교해도 대단히 싼 가격이다. 그렇기에 길을 잘못 들어도, 걷기 귀찮아도, 주위에 할 게 없어 심심해도 홍콩의 트램에 마음 편히 오를 수 있다.

 

가격이 저렴하니 사람이 미어터질 것 같지만 또 그렇지만도 않다. 가격이 저렴한 만큼 속도는 느릿느릿 천천히 가기 때문에 바쁜 일상을 사는 홍콩 사람들은 트램보다 빠른 지하철을 주로 이용한다고 한다. 그래서 저렴한 가격만 보고 트램에 모든 사람이 몰리지는 않는다는 사실.

 

하지만 한두 정거장같이 가까운 거리의 경우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시간과 기다리는 시간을 모두 합쳐 비교해 보면 도로 위에서 그냥 바로 탈 수 있는 트램의 효율이 압도적이라고 한다.

빌딩 숲 사이를 가로지르는 트램노선

 

홍콩섬의 트램은 정말 자주 온다. 여느 관광용 교통수단의 배차 간격이 30분~1시간 단위인 것과 매우 비교가 될 정도로 시간 간격이 잦다. 그럴 수밖에 없다.

 

홍콩 트램의 노선은 동쪽 끝인 케네디타운(堅尼地城, Kennedy Town)부터 서쪽 끝인 샤우케이완(筲箕灣, Shau Kei Wan)까지 하나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한 줄로 쭉 이동하되 모든 트램이 끝에서 끝으로 다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중간중간 종점이 존재하여 일정 구역만 왔다 갔다 하는 시스템이다.

 

한마디로 대부분의 모든 정류장이 서울역 버스 환승 정류장 같은 느낌이라 보면 된다. 그래서 특정 트램 정류장에 있다 보면 중간 구역을 왔다 갔다 지나가는 모든 트램이 다 거쳐가기 때문에 1분 이내의 간격으로 들어오는 무한의 트램 행렬을 볼 수 있다.

기다릴 필요가 없는 무한의 트램 행렬

 

중간에 해피벨리(馬地, Happy Valley)로 빠지는 부분이 한 군데 있긴 하지만 잠시 선로를 이탈해 회차하는 느낌으로 다시 돌아와 메인 선로에 다시 합류한다.

 

그 외엔 다 같은 선로를 사용하기에 트램을 이용한 여행 계획을 짜면 절대 길을 잃을 수가 없다. 어차피 길은 하나이기 때문에 내가 가려고 하는 곳의 정류장의 이름만 확실히 알고 있으면 시간은 조금 걸릴지언정 방향만 맞춰 타면 결국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게 된다.

 

 

구형 트램

 

현재 홍콩에서 트램은 효과적인 교통수단이라기보다 홍콩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소중한 관광자원으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전 세계를 봐도 도심 한가운데에 트램이 달리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트램을 활용하는 도시들을 중에서 구형 트램을 아직도 사용하는 곳은 홍콩이 유일하다.

 

호주의 애들레이드나 멜버른에도 아직 대중교통의 일부로 트램이 달리고 있지만 모두 신식 열차를 사용하고 있어서 막상 내부는 일반 전철과 다른 점을 느끼지 못할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철도 마니아들은 물론 세계의 여행객들이 홍콩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로 트램을 꼽는 것이 아닐까.

종점이 차고지가 아니라 그냥 로터리를 한바퀴 돌아 나가는 방식이다

 

대신 그만큼의 단점도 존재한다. 구형 트램은 더운 홍콩의 날씨에 맞지 않게 에어컨이 없다. 그래서 홍콩 시내를 그대로 즐기고 싶은 여행객이 아니고서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름이 되면 트램보다는 지하철로 몰리게 된다.

 

내가 홍콩에 갔을 때는 점점 더워지는 여름의 초입이었기 때문에 좌석의 자유를 마음껏 누렸을지도 모르겠다.

더운 날에도 창 밖으로 부는 바람이 무척 상쾌하다

 

이렇게 타는 사람들에게 많은 행복을 주기만 할 것 같은 트램도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홍콩의 트램은 영국의 식민지 시절에 개통된 근대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트램이 2층인 이유가 그러하다.

 

당연하겠지만 그 시절 트램의 2층은 특별석으로 관리되었고 영국인들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그럼 중국인들은 1층을 사용했을까? 그것도 아니다.

 

트램의 1층은 인도인들이 사용했다고 한다. 중국의 영토였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대다수였겠지만 재미있게도 그 안에서는 인도인이 중국인에 비해 더 나은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같은 식민지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도 차별이 있었고 계급이 나눠진 듯하다.

 


 

홍콩 여행을 계획할 때 트램을 일정에 넣지 않을 수는 없다. 유명한 관광지인 미드레벨, 소호거리를 가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한 번쯤 트램을 거쳐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홍콩섬을 가서 트램을 타게 될 거라면 끝에서 끝까지 트램만으로 돌아보는 일정을 계획해 보는 것도 어떨까 한다. 요금도 저렴해서 부담 없고 길을 잃을 염려도 하지 않아도 되며 생각보다 트램 노선 끝에 위치한 장소들은 홍콩 도심과는 다른 매력이 정말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트램 타고 홍콩섬 한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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