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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가을에 사색을 즐기며 걷기 좋은 일본 교토 여행지 :: 철학의 길

일본/일본여행

by Nohmad J 2019. 5. 28.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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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길[哲学の道]

한 달에 한 번쯤은 특별한 목적지 없이 걷곤 한다. 집 앞에 있는 천을 따라 별다른 생각 없이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로 한없이 걷다 보면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마음이 편해지곤 한다. 아무런 생각 없이 한두 시간 걷고 나면 잡생각이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사색을 하며 산책을 하는 것이고 반대로 말하면 그냥 멍 때리고 걷는 것이긴 하지만 복잡한 머릿속을 비울 수 있어서 나는 그렇게 멍하니 걷는 걸 좋아한다.

 

여행을 할 때는 머리가 항상 복잡하다.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많은걸 해야 하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다음 일정에 대한 생각이나 그 와중에 지금 둘러보고 있는 관광지에 대한 감정도 느껴야 하고 이동 수단에 대한 생각도 머릿속에 가득 눌러 담아야 한다. 이미 두 달 가까이 그렇게 긴장의 연속인 일정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철학의 길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휴식처이자 힐링이었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으면서 멍하니 걸을 수 있다니. 무척 즐거운 여행이지만 가끔은 이런 정신적 휴식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런 연유로 철학의 길은 나에게는 어떤 의미로 보상이었다. 이런 기분을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의 길은 주위에서 교토에 가려고 한다는 사람들에게 쉽게 추천할만한 장소는 아니다. 나에게 최고의 장소가 어떤 이에게는 최악의 장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철학의 길」

1890 년 히가시야마 산록에 완성된 후 1912 년에 연장된 비와코의 소수로를 따라 조성된 벚꽃이 아름다운 산책로(와카오지 다리에서 죠도지 다리 사이 약 1.8km)입니다. 근처에는 세계 문화유산인 은각사를 비롯한 저명한 사찰이 산재하여 지금도 교토의 전통적인 역사와 문화가 숨 쉬고 있습니다.

 

1968 년 환경 보존과 정비를 요구하는 지역 주민들의 열정에 교토시가 응답하여 1972년에 산책로가 완성되었습니다. 이후 주민과 수도국이 헌신적으로 아끼고 가꾼 결과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반딧불」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 등 사계절마다 시민과 관광객들의 쉼터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1986년에는 「일본의 다리 100선」에 선정되었습니다.

 

철학적인 생각을 해야만 할 것 같은 길

이름부터 상당히 거창하다. 철학의 길. 이 길은 교토대학교의 교수이자 일본 근대 철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니시다 기타로'라는 한 철학자가 이 길을 산책하며 사색을 즐기고 철학적인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해서 '철학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름이 '철학의 길'이라고 해서 뭔가 철학적인 이벤트가 있거나 한건 아니다. 아마 예전에 한 철학자가 이 길을 좋아했다는 이유로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짜 맞춰진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이름이 붙어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디서든 볼 수 있을 법한 개천 옆의 평범한 산책길이 낭만을 꿈꾸는 여행자들에게는 충분히 찾아와서 사색을 즐길만한 낭만적인 장소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 역시 저녁의 일정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 채 시계는 주머니에 넣어버리고 천천히 산책을 즐겼다.

 

사실 길만 봐서는 어느 동네에서나 볼 법한 개천 옆 길이다. 하지만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서인지 모든 길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두 사람이 겨우 같이 지나갈만한 좁은 길은 발이 걸려 넘어지는 사람이 없도록 정원 길처럼 잘 포장되어 있다. 또한 군데군데 이 곳이 철학의 길이라는 걸 재차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인지 '철학의 길'임을 나타내는 표지판이나 비석이 있다. 잠시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그런 표시를 보면 왠지 다시 철학적인 생각을 해야 할 것 같은 긴장감이 들곤 한다. 산책길은 전체적으로 상당히 조용한 분위기다. 아마 관광객이 많지 않았기에 그럴지도 모르지만 큰길과는 조금 떨어진 골목길인 데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전부 어떤 상념에 잠겨있는 듯 핸드폰도 만지지 않고 고요한 발소리만을 남긴 채 사라져 간다. 고민이나 걱정이 있다면 조용히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자신만의 생각에 잠기기에 좋은 장소일 것이다.

 

작은 개천을 따라 양 옆에 산책길이 길게 이어져있다.

쉬어가는 길

철학의 길은 거의 2km 가까이 되는 길이다. 산책길이라고 따지면 꽤나 길다고 볼 수 있다. 딱 보기에도 대로변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보이기 때문에 이 길을 다 걸어야 하는 게 아닐까, 아무것도 없는 산책로만 보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철학의 길의 중간중간에는 낭만에 젖었던 여행객들에게 꿀 같은 휴식을 제공할 예쁘고 아기자기한  멋을 풍기는 카페가 꽤 여럿 들어서 있다. 간단한 요기거리도 즐길 수 있는 가게도 있기 때문에 걷다가 허기가 지거나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한숨 돌리고 싶을 때 쉬었다가 갈 수 있다. 철학도 좋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처럼, 좋은 생각도 일단 배가 고프지 않고 당 충전이 잘 되어 있을 때 나오는 법이니까.

 

녹차 쉐이크.

나 역시 뜨거운 여름의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잠시 눈에 보이는 카페에 들러 맛챠(まっちゃ) 쉐이크를 주문했다. 단순한 녹차긴 하지만 왠지 일본에서는 이 녹차를 이용해 다양한 간식거리를 만들기 때문에 한국과는 다른 녹차의 맛을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이왕 철학의 길에 와서 옛 철학자들이 걸었던 같은 거리를 걷자니 아이스커피보다는 옛사람들도 먹었을 법 한 차를 마시기로 했다. 하지만 그대로의 녹차는 너무 더워서 도저히 마실 용기가 나지 않았기에 시원한 셰이크를 골랐다. 텁텁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깔끔하고 부드러운 맛. 이래서 일본에 오면 맛챠로 된 간식들을 먹나 보다 싶었다.

 

아기자기한 멋이 남아있는 철학의 길.

다시 와서 걷고 싶은 길

아마도 여러 볼거리가 있는 화려한 여행지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철학의 길'이 그저 시시한 산책길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정리가 잘 된 느낌이 나는 산책길이 어떤 화려한 관광지보다 더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이런 분위기를 누릴 수 있던 이유로는 시기의 탓도 있을 것이다. 보통 봄에는 벚꽃이 만개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물들어 이 작은 길이 관광객으로 가득하다고 한다. 아마 눈은 즐거울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사색을 하며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누리며 정신적 즐거움을 누리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에 8월이라는 애매한 시기에 혼자 철학의 길을 방문한 나는 이런 소소한 행복과 사치를 마음껏 누릴 수 있던게 아닐까. 

 

개천을 따라 쭉 늘어져 있는 나무숲을 걷다 다리가 잠시 아프다 싶으면 조용한 카페에 앉아 녹차 한잔을 마시며 잠시 숨을 고르고, 또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길 중간중간 있는 작은 사찰을 둘러보다 보면 이 순간만큼은 철학을 생각하지 않아도 내가 마치 고고한 철학자가 된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철학의 길. 고민거리나 마음에 짐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문제거리들을 가지고 철학의 길을 걸어보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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